[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23〉일상으로의 복귀, 잊힐 권리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사람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지낸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잊힐 권리를 촉발시킨 사람이 있다. 스페인 변호사 곤잘레스는 2009년 구글 검색을 하고선 깜짝 놀랐다.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10년 전 언론 기사가 아직 있었다. 구글은 지워주지 않았다.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랜 기간 게시돼 보도목적을 달성했다. 현재 그의 상황도 옛날과 달라졌다. 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선 안된다. 검색에서 제외하라는 판결이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다른 사례도 생각해 보자. 누군가 파렴치범으로 몰려 법원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언론에서 다루었고 인터넷 블로그, 카페,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했다. 법적 다툼 끝에 대법원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불행하게도 무죄확정은 보도되지 않았고 파렴치범이라는 기사만 검색됐다. 외국 여교사 이야기도 있다.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 스트리퍼로 활동했다. 뒤늦게 공부해 교사로 취업했다. 스트리퍼 시절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바람에 해고당했다. 어떤 정치인 이야기다. 오래전 음주운전, 탈세 등 범법사실에 관한 기사나 자신에게 비판적인 내용을 실은 기사가 인터넷에서 검색됐다. 지우지 못했다.

당신은 누구 편을 들고 싶은가? 여기 온라인을 통해 일반인도 볼 수 있게 게시된 정보가 있다.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침해를 받은 자가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 등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권리는 위법한 정보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적법한 게시물을 대상으로 지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잊힐 권리로 보기 어렵다. 고민이 여기에 있다. 잊힐 권리는 직접 또는 제3자에 의해 온라인에 게시된 적법한 표현물에서 받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다. 온라인 정보는 전파가 쉬워 확산되면 피해가 클 수 있다. 제3자가 올린 정보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므로 나에 관한 것이라도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등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면 지울 수 없다.

잊힐 권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반대가 크다. 정치인 등 공인에게 과거를 세탁할 통로가 된다. 언론 등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 언제든 지울 수 있으니 무책임한 글이 온라인에 범람해 문화 오염을 가져온다.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인 등 공인의 악용을 막되 데이터 홍수 시대에 일반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
그림작가 이소연 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올린 게시물은 아이디, 비밀번호를 찾아 직접 지울 수 있다. 물론 게시물을 올린 자가 사망하였다면 유족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게시물을 관리하는 사업자가 폐업 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부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물론 내가 올린 게시물이라도 제3자와의 계약 등을 통해 법적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면 함부로 지울 수 없다.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의 자유를 생각한다면 함부로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 경우는 어떨까. 표현물이 게시된 날로부터 오랜 기간이 경과해 표현의 자유가 목적을 달성했다. 현재는 당시와 다른 상황이다. 미성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과거 표현물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 국한해 최소한의 보호수단으로 도입하면 어떨까. 물론 원본 데이터는 원 사이트에 남아 있다. 검색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검색되지 않게 하는 기술적 조치는 소요비용, 경영부담 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누군가가 올린 글, 사진, 영상에서 받는 극심한 고통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작지만 견고한 다리’를 놓아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것이 디지털 배려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