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78〉혁신을 안무하다

온 유어 토스(On Your Toes). 흔히 '단단히 준비해'나 '긴장해야 해' 같은 의미의 단어 묶음으로 쓰인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라면 '까치발'도 됨직 싶은 이것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뮤지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뮤지컬은 여럿 브로드웨이 전설을 낳았다. 그중 안무를 맡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있다. 안무(按舞)를 뜻하는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가 춤을 의미하는 코레이라(khoreia)와 글쓰기를 의미하는 그라피아(graphia)에서 유래했다면 발란신은 이 '댄스 라이팅'이란 묘사가 가장 어울리는 안무가였을 지도 모른다.

혁신을 미학과 비교할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의 영역이 있고 다른 지향이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혁신을 안무에 비유되기도 한다. 일견 무관한 이 둘을 잇는 연결고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법 시간이 흐른 질레트 얘기다. 이즈음 질레트는 매년 20개 정도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선 신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출시하고 판매하는 과정이 언제나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진즉 대성공이 예상됐던 센서(Sensor) 면도기가 출시될 즈음에 후속 제품인 엑셀(Excel)은 개발 윤곽이 잡혀 있을 무렵이었다. 물론 엑셀(Excel)이 출시된 것은 자기 자신의 후속 제품과 그 이후의 후보 제품이 개발 중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프로토타입으로 있던 어떤 제품이 생산된다는 건 그 후속 제품의 모형이 개발팀 금고에 들어가 있는 셈이었다. 이건 질레트의 전환 관리 방식의 대명사격으로 불렸다. 하지만 실상 이것이 질레트 방식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새 제품을 내놓을수록 경쟁업체가 따라잡거나 다른 시장에 모방제품을 내놓은 걸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질레트가 센서를 출시한 후 제품 라인업을 완성하고 여러 시장에 내놓는데 4년이 걸렸다면 후속작인 엑셀 때는 이걸 더 줄이는데 목표를 두었다.

그럼 질레트가 얻은 건 이것뿐이었을까. 이 기간 동안 질레트가 거둔 한 제품에서의 성공은 다른 제품을 위한 교두보가 됐다. 면도기는 면도용 크림으로, 다시 애프트쉐이브로 그리고 데오도란트가 되었다.

이렇게 질레트는 1990년에 센서, 그로부터 거의 매 5년을 사이에 두고 엑셀, 마하3 그리고 퓨전을 출시한다. 이 사이 하나짜리로 시작한 면도날은 두 개, 세 개, 그리고 다섯 개로 늘어났고, 언제나 더 나는 다른 기능도 추가해 갔다.

물론 질레트의 이 긴 여정도 시장과 기술의 변화가 만든 와해적인 비즈니스모델과 시장 변화에 또 다른 변신이 필요한 시점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질레트는 이 방식으로 전체 매출 중 신제품으로부터 40 퍼센트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이것은 소비재 기업으로선 놀라운 업적이었다.

당대 질레트 CEO였던 알 지엔(Al Zeien)은 이것에 대해 단지 경쟁자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그 비즈니스를 조율하고 지휘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그동안 이 전략은 이런저런 명칭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정작 많은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전략이 되지는 못한 건 질레트의 놀라운 결과를 생각하면 역설처럼 보인다.

어쩌면 조지 발란신이 발레와 재즈 댄스로 이 '온 유어 토스'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컬 중 하나를 안무해낸 것처럼 질레트도 위대한 혁신 방식을 안무해 낸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안무를 코레오그래피라 부른다면 오늘 우린 혁신을 카이노토모그라피아(kainotomographia), 즉 '새 것을 쓰는 일'이라 부름직도 하겠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