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라이프]바쁜 일상 속 뉴트로 갬성 채우는 '금성전파사'

시대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이 있다. 1970~1980년대 동네 어디든 하나쯤은 있었던 '전파사'도 그 중 하나다. 집집마다 빠르게 보급되던 가전제품 수리를 책임진 전파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전자산업을 있게 한 숨은 파수꾼이다. 어린 시절 '전파사 아들'로 불렸던 기자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는 지친 일상에서 추억여행 쉼표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는 이름과 달리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곳은 아니다. '전파사'와 '고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고치는 것은 전자기기가 아닌 방문객들의 마음이다. LG전자 전자제품과 이색체험을 하며 신구(新舊) 조화의 뉴트로 감성을 채우는 힐링 공간이다.

시작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LG전자와 스타벅스는 경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금성전파사와 경동극장을 리모델링 한 카페 경동1960을 각각 조성하며 MZ세대 핫플레이스를 조성했다. 지난해 12월 오픈 이후 약 9개월간 입소문을 타며 지금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하루 3000여명이 오고 가는 이색명소로 자리 잡았다.

입구에서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가상 캐릭터인 '금성아저씨'다. 아저씨라기보다는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으로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을 모티브로 따왔다. 그 옆으로는 LG전자가 금성 시절 최초로 선보인 냉장고·TV·세탁기를 만나볼 수 있다. 지금과는 달리 진정한 백색가전의 투박한 디자인과 아날로그식 레버가 눈에 띈다.

금성전파사는 지역경제활성화 취지를 담고 있는 만큼 경동시장과 교류하는 부분도 많다. 나만의 반려식물을 데려갈 수 있는 '마음고침 코너'가 대표적이다. 방문객은 이 코너에 QR코드 문답을 통해 마음 상태에 어울리는 반려식물을 추천받고 친환경 화분과 종이가방으로 이를 가져갈 수 있다. 이때 방문객에게 선물 되는 모종 모두가 경동시장에서 들여오는 것들이다. 개성고침코너에선 폐가전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데, 수익금 전액 경동시장 지역상생기금으로 활용된다.

금성전파사는 △마음고침 △개성고침 △스타일고침 △기분고침 △새로고침 △고민탈출의 총 6개 코너로 구성됐다. 체험과정에서 LG전자의 제품과 기술을 만나볼 수 있다. 새로고침 체험을 하는 동안 LED 나노블럭 사이니지, 투명 OLED 디스플레이, 스타일러, OLED TV, 그램 노트북, 슈케이스, 싱큐 앱 등 최신 제품을 접한다.

제품 홍보가 노골적이지 않아 좋았다. 코너 다수가 체험 위주로 채워졌다. LG전자 제품은 체험 도구일뿐 테마의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체험관 전체 분위기도 전시관이나 홍보관과는 달리 재미와 흥미에 초점을 맞췄다. 현장에서 방문객 체험을 도와주는 매니저 이름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곳에서 매니저는 '샛별이'로 불린다. 이름도 '금 A' '금 B' 등 '금'이라는 성에 외자 가명을 쓰고 있다. 과거 금성사의 이름을 매니저 호칭에 녹여낸 셈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코너는 방탈출 게임을 할 수 있는 고민탈출코너다. 금성전파사 오픈 초기부터 화제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맘카페에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예약하려면 그야말로 '광클릭' 경쟁을 해야 할 정도다. 금성아저씨가 일일 조수가 되어 방탈출을 도와준다. 방문객은 LG 싱큐 앱을 통해 방에 있는 전자제품을 움직여보며 문제를 푼다. 퀴즈의 보안이 중요한 방탈출 특성상 자세한 내용을 기사에 담지 못해 아쉽다.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투명 OLED, 식물재배기 '틔운' 등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투명 OLED, 식물재배기 '틔운' 등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곳은 마음고침코너였다. 가상 수족관을 보여주는 투명 OLED로 둘러쌓인 방으로 과거 전파사 작업실 내부를 연출한 장소다. 이곳에서 방문객은 무드업 냉장고 등 신제품을 LG 싱큐 앱으로 조작하고 전파사 아저씨가 되어 인증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기자는 인두 납땜을 하면서 저항기 4색띠를 가르친 아버지의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

스타일고침코너에서는 스타일러 등을 통해 신발부터 옷까지 스타일을 새롭게 고치고 재생플라스틱을 활용한 나만의 액세서리도 만들 수 있다. 가상 신발 NFT를 만들 수 있는 몬슈클(몬스터 슈즈 클럽)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볼 수 있다. 개성고침코너에서는 노트북 외관을 남다르게 리폼하고, 기분고침코너는 LG 올레드 TV 화면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어린 방문객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개인의 고민을 접수하면 맞춤 힐링 영상을 통해 기분전환할 수 있는 새로고침코너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금성전파사는 전자제품을 고치는 곳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실제로 고장난 전자제품을 들고 수리하러 온 고객이 있었다는 샛별이들의 웃지 못할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고침은 LG전자 서비스센터로 가고, 마음 고침은 금성전파사를 찾으면 된다.

무더위의 끝자락, 친구·연인·가족과 전파사 추억여행을 함께 하며 일상의 쉼표를 추천한다.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전통시장이 레트로 콘텐츠와 결합해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기자의 어릴 적 놀이터였던 신길동 전파사
기자의 어릴 적 놀이터였던 신길동 전파사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