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33〉디지털 시대, 혁신을 다시 정의하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작가 마르셀 뒤샹은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기를 뜯어냈다. '샘'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고루한 제도권 미술시스템에 도전한 그의 작품은 예술일까. 작가 김범도 덜하지 않다. 모형 범선을 만들었다. 학생을 대하듯 진지하게 가르쳤지만 정작 지구에는 바다가 없다고 교육했다. 모형 범선은 알아들었을까.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교육현실을 비판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작품은 예술일까. 오랜 창작의 고통 끝에 나온 그들의 작품은 악평과 호평을 함께 받았다. 예술인지 아닌지 나누고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은 뭘까.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미술활동을 하는 작가도 늘고 있다. 이런 작가들이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를 성실하게 그려온 기존 작가들을 도태시켜도 될까.

혁신을 정의하는 것도 예술만큼 쉽지 않다. 일본 전국시대 포르투갈 상인이 조총을 들여왔다.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을 터트려 탄환을 발사한다. 사격에 10초 넘게 걸린다. 기선 제압 외에 실용성을 갖춘 무기로 볼 수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격법을 개선했다. 조총을 발사하는 사수와 심지에 불을 붙이는 조수를 따로 뒀다. 조총부대를 3열 횡대로 구성했다. 1열 사수가 사격한 후엔 가장 뒷줄로 빠진다. 심지에 미리 불을 붙여둔 2열이 사격에 나선다. 2열이 뒤로 빠지면 3열이 사격했다. 10초의 단점을 없앤 효과는 컸다. 조총부대 배치방법을 바꾼 것만으로 혁신이라 할 수 있을까. 혁신이면 규제를 완화하거나 기득권을 양보해 지원하는 공감대가 있다. 혁신인지 여부가 중요해진다.

혁신은 낡은 풍속, 관습을 기술, 조직, 방법 따위로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한다. 디지털 혁신은 신기술을 투입해 상품, 생산방법, 시장, 자원, 조직을 바꿔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를 만든다.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다. 마차산업이 철도산업으로 바뀐 것처럼 새것이 옛것을 대체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창조적 파괴는 쉽지 않다. 기존의 촘촘한 법령과 기득권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함부로 파괴하다간 범죄자가 되기 싶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
그림작가 이소연 作

혁신이라는 단어가 법률 명칭에 들어간 것도 많다.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 모빌리티 혁신 및 활성화 지원법, 중소기업 스마트제조혁신 촉진법 등이다. 내용에 혁신이 들어간 법률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명확하진 않지만 대부분 기술발전, 사업화, 가치창출 등 3가지 요건이 핵심이다. 그것이면 충분할까.

낡고 부조리한 것은 그 자체로 국가발전을 막는 병폐이니 반대를 무릅쓰고 혁신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대는 기술발전이 빠르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를 위해 낡고 부조리하지 않은 것도 걷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함부로 없앨 수 없다. 디지털 혁신을 위해 문화 콘텐츠, 저작권, 개인정보, 데이터 등 공동체 자산을 투입해야 한다. 고객의 이용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와 피드백의 활용도 중요하다. 디지털 혁신이 일방적일 수 없는 이유다. 공존을 혁신의 심장으로 달고 시장에 나와야 한다.

혁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장된다면 그건 더욱 문제다. 규제에 내성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이 AI 등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 우리 기업의 상품도 생명, 신체 안전에 문제없거나 시장에서 통제장치를 갖춰 빨리 진입해 당당히 겨루고 평가받아야 한다. 진입규제 여부를 결정하는 정책 판단이 길면 거짓 혁신이 오래 버티고 진짜 혁신이 꽃피지 못하는 부조리가 생긴다. 정부도 진입규제보다 시장의 공정경쟁과 고객 보호 질서 마련으로 중점을 옮겨야 한다. 진정한 혁신이 시장에 넘쳐 특정 산업, 기업의 매출만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삶의 수준을 구조적으로 높여 퇴행 불가능해야 디지털 강국이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