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81〉시선을 정렬해 보기

슈퍼피셜(Superficial). 피상적이란 의미를 갖는다. 원래 '표면'을 뜻하는 라틴어 수퍼피씨에스(superficies)에서 왔다고 한다. 접두어격인 슈퍼(super)는 '위'를, 나머지 부분은 '얼굴'이나 '표면'을 의미한다. 그러니 문자적으로는 '표면 위에'나 '겉보기에는'의 의미를 갖겠다. 겉과 속이 다르거나 사물의 근본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 관심 없거나 혹은 표면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에둘러 표현하는데 쓰인다.

혁신이라고 세상의 이끌림에서 예외는 아니다. 우리 역시 반짝이는데 끌린다. 단지 자칫 반짝임에 시선을 뺏기는 동안 정작 중요한 원리를 놓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1980년대 미국 거대기업을 특징짓는 것 중 하나는 관료문화였다. 어느 기업이든 조직은 수직적이고 관료 시스템과 다를 바 없었다. 잭 웰치가 최고경영자로 취임하던 무렵의 GE도 마찬가지였다. 이즈음 GE에는 현장 생산직과 경영진간 무려 12개 계층이 있었다. 평균 7명으로 구성된 조직에는 무려 2만 5000명 관리자가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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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뿌리깊은 엘리트주의도 있었다. GE에는 엘펀 소사이어티(Elfun Society)라는 오래된 직원 모임이 하나 있었다. 1919년 설립된 원래는 직원과 퇴직자에게 재정 지원같은 혜택을 제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영진으로 승진 통로로 굳어졌다. GE는 표면적으로는 유쾌해 보이지만 아래에선 불신이 판을 치고 있었다.

잭 웰치는 뭔가 진정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1981년 최고경영자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에서 연설할 기회를 갖는다. 이날 그가 내놓은 GE의 전략은 “실질적인 성장 산업을 찾고 우리가 속한 모든 사업에서 1위나 2위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을 맹숭맹숭해 했다. 그들은 웰치가 뭔가 확실한 숫자를 내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당황스러웠다. 이날 신인배우의 등장은 그리 성공하지 못한 셈이었다.

웰치는 자신의 비전을 전달하고 구현할 만한 개념적 도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시류나 반짝이는 방식 대신 모든 직원이 알고 이해하는 논리와 원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어느 날 아내 캐롤린과 레스토랑에 앉아 있던 그는 냅킨을 한 장 꺼내든다. 그리고 세 개의 조금씩 서로 겹친 원을 그리고 각각엔 서비스, 첨단 기술, 핵심이라고 적는다. 이후 원 안과 밖에 사업부 명칭을 써내려간다. 원 안에는 1등이나 2등이 될 사업부를, 반면 원 밖은 성과가 낮거나 저성장 시장이나 전략적 적합성이 낮은 것들이었다.

경영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2 대 7 대 1 원리는 GE에서 상위 경영진이라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GE의 기준과 역량은 높아진다.

모아레(Moire)는 두 개의 유사한 패턴이 중첩될 때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다. 모아레 효과는 두 패턴의 간섭으로 발생하는 데 패턴이 완벽하게 정렬되면 패턴은 선명해진다. 하지만 패턴이 엇갈리면 간섭효과는 패턴을 흐릿하고 왜곡되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새들이 반짝이는 것에 끌리는 현상을 모아레 쪼기(moire pecking)라고도 한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반짝이는 물체는 새의 망막에 모아레 패턴을 만들어 이런 자극이 쪼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혁신의 원리를 모른 채로 혁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새 선이 교차하는 순간 시선을 뺏기고 반짝임에 이끌리게 된다. 당신이 혁신을 표면과 피상으로 다룰 때 언젠가 내가 뭘 하고 있던 건지 되묻는 때가 올 테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