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39〉새로운 대중국 산업전략 필요

이 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넬대 Visiting Scholar
이 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넬대 Visiting Scholar

8월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11억 9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대중국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1993년 1월 이래 처음으로 11개월 연속 적자가 확정됐다. 30여년만에 처음 접하는 낯선 무역 성적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무역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중국과의 교역을 되돌아볼 때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더 당혹스러운 점은 한·중간 교역이 이러한 흐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교역의 구조가 지난 10여년을 지나면서 상당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중간 교역은 대부분 중간재를 서로 주고 받는 구조다. 이는 양국이 상당히 깊은 수준의 산업 분업관계로 얽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 수교 이후 우리는 월등한 제조 경쟁력과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에 양질의 중간재를 공급하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중국 특수를 누렸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가진 경쟁우위의 상당 부분이 상실됐고, 특히 우리 주력산업 생산거점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대거 이전하면서 우리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야금야금 우리 중간재 수입시장을 잠식하면서 우리나라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원래부터 높았던 중국산 원료 및 범용 소재·부품의 가격 경쟁력에 덧붙여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첨단 소재·부품까지 경쟁우위 영역을 확장하면서 중국은 우리에게 단순히 값싼 중간재를 공급해주는 국가를 넘어 우리 대부분 산업의 글로벌가치사슬(GVC) 전략을 바꿀 정도로 양질의 소재·부품을 공급해주는 국가로 변모했다. 오히려 우리가 과도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중간재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지난 10년간 한·중간 교역은 드라마틱하게 공수가 전환됐다.

이제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한·중간 산업·무역 관계가 현 추세로 고착화될 경우 향후 새롭게 형성될 미래 제조업 경쟁 구도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의 변화된 위상과 현재 우리가 가진 부문별 경쟁우위를 냉철하게 인식,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그러나 과거와는 달라진 중국을 우리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비록 예전에 비해 생산지로서의 매력이 다소 떨어지고, 서방의 거센 압박으로 중국 경제의 리스크가 높아졌다고 해도 글로벌 제조업 생산 네트워크와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새로운 대중국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력업종별로 현재 한·중간 경쟁우위, 그리고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수준을 면밀히 진단한 후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산업 고도화 방향에 편승할 수 있는 핵심 중간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중고위기술 영역일 가능성이 높은 이 분야에 대한 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현재 우리 소재·부품 전문기업의 글로벌화와 규모화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특히 친환경화·디지털화에 대한 선제적 투자로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현재의 흐름을 반전시켜야 할 부분도 있다.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거의 따라 잡혔거나 전세가 역전된 분야에 대해서는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데, 특히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OLED와 시스템반도체다. 중국과 초격차를 확보·유지할 수 있도록 민·관이 각별하게 반전이 필요한 분야를 다룰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 시장으로 향하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우리가 해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의 입지적 장점을 극대화해 중국 내 기업의 탈중국 수요를 흡수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현재의 고착화된 GVC 구도를 흔들면서 우리 대중국 수출의 총량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대상에는 우리 기업, 서방 기업, 심지어 중국 기업도 모두 포함된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과 가장 가깝고 양질의 투입 요소와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제조 친화 국가다. 산업 입지적 매력도와 투자 인센티브를 주변국에게 뒤지지 않게 마련한다면 현재 사업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중국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 경제·산업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래서 지금이 대중국 산업전략을 검토·수립해야 할 적기다. 모두가 정중동하며 불확실성이 걷히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기를 과감하게 활용해 미리 준비할 경우, 불확실성이 걷힐 때 누구보다 빨리 달려 나갈 수 있다. 기회가 왔고, 바로 지금이다.

이 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코넬대 Visiting Scholar, jlee@ki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