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못 넘었지만…대한민국 외교·경제 지평 넓혔다

정부·기업 '원팀'에도 엑스포 쓴맛
외교 확장·신시장 개척 등 성과도
부산, 2035년 재도전 검토 밝혀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유치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유치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이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기업은 물론 온 국민이 함께 뛰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전세계를 대상으로 했던 엑스포 유치전은 우리 외교와 기업의 활동 지평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부산은 2035년 엑스포 유치에 재도전하는 계획을 검토키로 했다.

세계박람회기구(BIE)는 29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사우디아라이바 리야드를 최종 선정했다.

부산은 182개 회원국 중 165개국이 투표한 1차 투표에서 29표를 얻는데 그쳤다. 리야드는 총투표의 3분의 2가 넘는 119표를 얻어 1차 투표에서 개최를 확정했다. 로마는 17표에 머물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지는 대통령으로서 우리 부산 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여러분에게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실패 원인에 대해 “민관에서 접촉하며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사과했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와 이탈리아는 물론 중도 탈락한 다른 국가보다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사우디가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로마보다도 뒤진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유치전을 본격화하면서 판세를 흔들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각종 국제행사 등에서 90여개국, 500명 이상 인사를 만나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 국빈방문 등을 통해 직접 찾은 국가만 10여개국에 달한다. 6월 BIE 총회에선 직접 프레젠테이션(PT)을 하기도 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를 필두로 각 부처 장관들과 김진표 국회의장, 여야 의원들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부산 지지를 요청했다.

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 회장)의 목발 투혼도 있었다. 최 회장이 직접 방문했거나 국내외에서 면담한 국가는 180여개, 고위급 인사는 900명이 넘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수시로 해외를 오가며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탰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원 활동에 매진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LG 주요 경영진도 주요 전략 국가를 대상으로 유치 교섭 활동을 이어갔다.

비록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미·일·중·러에 치우쳤던 우리 외교의 저변을 확연하게 넓힌 성과도 있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한상의는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고 밝혔다.

부산이 세계적 도시로 이름을 알린 것도 성과다. 정부와 부산시, 국회, 대기업 등 민관이 '원팀 코리아'로 적극적인 교섭 활동을 편 덕이다. 글로벌 스마트시티 지수(SCI)에서 세계 77개 주요 도시 가운데 19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에 이어 3위, 국내에서는 1위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총회 직후 2035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평창동계올림픽도 3차례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듯,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번 경험을 토대로 치밀한 계획과 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