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27〉생성AI의 2023년, 이후의 인간의 의미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기술 트렌드를 확인하는 소셜 네트워크인 해커뉴스는 최근 15년간 가장 많은 언론 기사 타이틀에 등장했던 테크 키워드였던 암호화폐, 아이폰 등을 제치고 '인공지능(AI)'이 전년 대비 560% 상승한 빈도로 언급되었음을 밝혔다. 이는 곧 2023년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며 기술 산업 전반을 장악한 AI의 영향력과 이로 인한 내년에도 목격하게 될 거대한 관련 트렌드의 지속을 의미한다.

올해는 오픈AI의 생성AI 분야 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구글과 메타가 서둘러 자체 제품을 출시했고, 이후 신규 플레이어들의 진입 및 오픈소스 붐이 일었다. AI용 반도체인 GPU를 설계하는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영업이익률 40%를 달성했으며 주간 활성 사용자 수 1억 명을 달성한 챗GPT의 오픈AI는 비영리법인이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치가 113조 원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AI 기술 업계의 투자 변화와 더불어 그동안 세계가 마주해 왔던 빅테크 기업들의 규제, 개인정보 보호, 경쟁구조, 유해 콘텐츠, 편향성, 지적 재산권, 특허와 관련된 기존의 복잡하고 상충되던 규제 문제의 확산에 'AI'가 더해졌다.

기술이 세상에 소개되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가치를 확인하고, 확인된 가치에 흥분하고, 익숙해진 해당 가치에 지루해하는 S커브 형태의 3단계로 구분한다면 2023년은 인공지능에 대한 시장성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확인해 본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음의 세 가지 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생성 AI로의 플랫폼 전환이 시작된 점이다. 역사적으로 PC에서 웹 오픈 소스, 스마트폰과 연계된 클라우드로 이어진 기술 업계의 주요 플랫폼 변화의 흐름에 있어 AGI에 다가서려 하는 생성AI와의 사용자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인류의 미래를 다르게 예측해보려 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렸다. 둘째는 대중이 AI에 전례없이 익숙해질 기회였다는 점이다. 세계인의 일상 업무에 사용되던 MS, 구글의 생산성 관련 프로그램에 생성AI와의 연결이 진행됐고, 인터넷 검색창 및 각종 고객 대응 서비스와 연계된 챗봇과의 대화는 사용자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사람간 물리적 연결이 줄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던 기존 커뮤니티의 증발 현상은 모범적인 대화 상대로서의 생성AI의 가능성마저 발견 및 급속도로 의미를 확인케 하는 계기가 됐다. 셋째는 EU의 새로운 AI 법안 합의가 공식적으로 이뤄진 점이다. 법안은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법안으로 의료, 교육, 국경 감시, 공공 서비스 등 AI 사용이 기본권에 큰 위험을 초래하는 분야의 피해를 완화하거나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기존의 무분별한 AI 사용 관련 잠재적 위험에 대한 구속력 있는 규칙이 제정됐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장과 사회와 비교해 AI를 보다 성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유의미한 과정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2023년은 AI의 한 해 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도구로서의 AI를 향한 기대와 가능성에 열광했던 시간이었던 만큼 앞으로 AI가 만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어 경험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불안이 일상적이고 개인적 수준에서 확장되어 온 한 해이기도 했다. 즉, AI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 해이기도 했다. 지난 15년 이상 빈번히 등장했던 디자인 싱킹, 고객 중심 등의 인간을 의미하던 키워드는 이제 AI에 밀려난 듯하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반바지에서 긴 바지로 옷차림이 바뀌듯 '인간'에 대한 관심은 결국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는 최근까지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AI의 기능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기계와 인간 사이의 구분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현상에 기인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아주 기본적 범주를 통해 근본적으로 AI와 구별된다. 명절이나 연휴의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따뜻함이 있거나 인간적 느낌이 있고 법원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관계 때문에 그 장소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의미를 경험하는 기준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19일 블로그를 통해 2024년이 AI기술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가 될 거라 예측한 바 있다. 한층 더 AI의 기술적 적용이 성숙해지는 만큼 내년에는 인간을 향한 질문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마주하는 상황,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라는 인간만이 경험 가능한 무대인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생성하는 요소들에 주목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과 AI 공존의 형태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서의 2024년에 필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