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97〉그 무엇, 그 어디로

업(Up). 위 혹은 위쪽을 뜻한다. 이 단어가 언제부터 쓰여졌을까 상상하는 건 흥미롭다. 누군가는 이것이 인도-게르만 공통 조어(祖語)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당시 이건 '아래' 혹은 '아래에서 위로'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였다는 데, 그래선지 '아래'란 뜻의 라틴어 수브(sub)와 관계를 찾기도 한다. 어쩌면 고대인들의 공간 개념은 위와 아래로 나누는 우리의 정적인 관념 대신 움직임과 방향의 역동성으로 공간을 추상화했는지도 모르겠다.

혁신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는 이걸 찾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것에 끝없이 생명을 불어넣어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것' 보다는 '그 무엇'을 찾아나선 것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누코르(Nucor)는 지금 존재해서는 안된다. 이 기업의 굵직한 반전만 다뤄도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만하다. 얘기는 1897년으로 거슬러간다. 그해 랜섬 엘리 올즈(Ransom Eli Olds)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우리가 올즈모빌로 알고 있던 바로 그곳이다. 헨리 포드보다 몇 해나 앞선 가히 디트로이트 자동차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1904년 올즈는 자신의 회사에서 사임한다. 더 나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지분을 팔고 투자를 받아 설립한 곳이 결국 레오(Reo)로 불렸다. 자신의 이름 랜섬 엘리 올즈의 첫 글자를 따고 가운데 약어를 뜻하는 점들을 뺀 것이었다.

하지만 럭셔리 자동차 시장은 지지부진했고, 트럭도 만들어보지만 그저 버틸 정도였다. 그러다 이런저런 인수, 합병을 거쳐 전미 누클리어 코퍼레이션(Nuclear Corporation of America)이란 기업이 된다.

이즈음 사업부 중 하나던 강철 장선 사업에 야금학도던 케네스 아이버슨(Kenneth Iverson)이 고용된다. 그는 고철을 사용하면 봉강(棒鋼)을 누구보다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1969년 그는 600만 달러를 들여 사우스캐롤라이나 달링턴에 첫 미니밀 공장을 연다.

그리고 얼마뒤 최고경영자가 되자 원자력과 에어컨 사업부를 팔고 사명도 누코르로 바꾼다. 레오 자동차가 그랬듯 누코르도 누클리어 코퍼레이션의 첫 머리들을 딴 셈이었다.

1986년 즈음 그는 '철강 산업 최고의 CEO'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기고로로 만들 수 있는 제품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한 가지 대안이 보이기는 했다. 씬 슬랩 캐스팅(thin-slab casting)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기존 방식보다 훨씬 저렴한 생산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 몇 번 실패 후에 1989년 첫 공장은 박(薄) 슬래브를 생산해 내기 시작하고 이렇게 저가형 평판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품질은 올라갔고 가전제품 외부 패널, 자동차 차체 같은 고품질 시장으로 넓혀간다.

얼마 뒤 누코르는 북미 최고의 철강사로 등극한다. 카네기 철강, 제이피 모건이 설립한 유에스 스틸, 그에 못지않았던 베들레햄 스틸의 자리를 대신한 셈이었다.

누군가는 이 역사를 업마켓(upmarket) 지향이라고도 부르고, 누군가는 바닥에서 시작하는 혁신 여정이라고도 부른다. 또 누군가는 이걸 와해성 혁신의 역동성이란 사례로 즐겨 들기도 한다.

실상 이들 설명에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 모두 새로운 가치를 찾는 다른 동학이니 말이다. 그곳이 저가 시장에서 시작하든 아니면 업마켓이라 부르는 곳을 지향하든 다름 없이 말이다.

대양의 항해자에게 출발점과 목적지가 다르지만 육분의(六分儀)가 가르키고 곳으로 향해하는 것처럼 혁신공간에서 중요한 건 '어딘가' 대신 '그 어디로'인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