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29〉AI 시대, '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9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매년 열리는 소비자 가전 업계 최대 행사인 2024 CES의 주제는 All On이다. 최근 5년 사이 급격한 관심과 투자가 진행된 인공지능(AI) 상용화를 위한 기업들의 시도가 이제 보다 대중의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수준 즉, 전 산업의 인공지능화를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인터넷이 현재 우리들의 삶에 당연히 존재하기에 굳이 대화의 소재로 끄집어내지 않듯이, AI의 일상적 적용에 대한 조용한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2016년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구글의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신경망을 기반으로 스스로 바둑을 학습하고 수백만개의 시나리오를 실행해 인간과의 대국에서 승리했다. 해당 사례는 이후 AI의 가능성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예시가 되었지만 평생을 바둑이라는 분야에 몰입해 온 상대 프로 바둑기사들에게는 슬픈 일이 되었다. 나아가 바둑을 두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당연했던 전제를 상기시켜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화 상대로서의 챗봇, 운전을 책임지는 자율주행차, 문서의 내용 요약과 번역을 해주는 생산성 관련 디지털 도구들은 모두 인간의 상대적 역할에서 비롯된 기술적 기획의 산물이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인간의 시각, 촉각, 청각 등의 감각을 근간으로 하는 경험 확장의 시도이며, 장애인보조기기 만드로의 로봇 손가락 의수 Mark 7D는 인간 활동의 재생을 돕는다.

하지만 이처럼 커져가는 기술적 비약에 대한 관심 뒤에는 언제나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존재해 왔던 '신체'가 있다는 점에 앞으로는 보다 의도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기본적이고 감각적인 요소인 육체에 대한 역사적인 재협상을 목격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 세계와 연결된 육체를 향한 기본적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누군가를 욕망하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현재의 기준은 무엇인지, 사물과 기업 나아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새롭게 확인해야 하는 시기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이상과 욕망, 신체와의 관계가 구체화되면서 컴퓨팅에서 생명공학, 재료과학에 이르는 신기술, 뷰티 케어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신제품, 그리고 지속가능성 투자를 고민하는 기업에 있어 변화하는 우리와 육체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의 상업적 기회를 예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육체에 대한 개념은 역사를 통틀어 핵심적인 관심사였다. 학자들은 21세기에 들어와 육체와 인간의 관계를 '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기술들이 실제 유기체가 얼마나 악취를 풍기고, 늙고, 죽어가는지 잊게 만드는 현재의 '완벽한 육체'를 향한 사회적 관심의 변화를 반영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담론, 미학, 소비, 기술 및 생물학적 혁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전의 인간 육체를 향한 논리적이고 중립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고 느껴지고 열정적인 방향, 즉 신체를 육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변화 또한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성 혁명으로써 성별과 성적 지향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더욱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식품, 생명 공학 분야에서는 인위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제품과 치료법을 제시하는 능력이 크게 발전했으며, 장내 미생물 군집과 같은 우리 신체 주변의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매력을 재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신체 자체를 향한 몰입과 신체 기능의 확장의 시도 간 긴장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해 앞으로 다음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질문과 관심을 두는 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첫째, 섹스와 친밀감은 독신주의, 출산율 저하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통해 바라볼 때 소비자들에게서 이전보다 사적으로 멀어진 주제라 할 수 있다. 섹스어필과 같은 고전적 마케팅 전략의 고려에 있어 유혹의 목적이 새롭게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자연과 부패는 살아있는 듯 보이는 천연 소재를 통한 미학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주제다. 이전의 추출 패러다임을 넘어서고자 하는 현재의 자연마저 최적화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대중적 미학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술과 신체는 차세대 증강과 가상현실이라는 목적 아래 우리가 자신의 몸과 맺는 새로운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주제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에서의 기술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기준으로 사업적, 사회적 적용 가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