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64〉조정 역할이 망가진 의대 정원 확대 문제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의 생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막연히 생각하면,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이 모여 있으면 엄청난 무질서와 혼란이 불가피할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 사회를 보면 실상 그렇게까지 무질서하거나 혼란스럽지 않다. 우리가 인식하든 안 하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넓은 주택, 쾌적한 주거환경, 좋은 차 등 많은 사람이 갖기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 물량이나 면적 등이 제한돼 있어 모든 사람이 가질 수는 없다. 결국 시장(market)이라는 기구가 작동해,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누구에게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많은 사람이 분출하는 개인적인 욕구나 욕망 등이 이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억제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이자, 우리 사회가 큰 혼란 없이 질서있게 유지되는 한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것이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분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관여돼 있고,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충돌함에도 종종 시장이라는 기구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런 영역에서는 시장에서처럼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이렇듯 시장기구의 조정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정치를 활용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슈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다. 정부는 지역의료의 붕괴와 필수과의 의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인 데 반해, 의사업계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정부가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게 지역의료 붕괴와 필수과 의사 부족 사태의 본질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의대가 소속돼 있는 각대학의 입장이 더해졌다.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입학정원 채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이전부터도 미달 걱정이 없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싶어했다. 미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의대 정원을 늘려주겠다고 하는데 반대할 대학이 있을 리 없다. 여기에 앞으로 의대를 갖고 있지 않은 대학은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한 몫을 했다.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데 따른 경제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의대를 갖고 있으면 일반적으로 그 대학의 위상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지방대일수록 그리고 사립대일수록 생존을 위해서는 의대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여기에 지역사회의 요구도 더해진다.

이렇듯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 그 충돌을 조정해 사회 혼란을 막고 질서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앞장서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의대 정원 확대문제를 활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정기구가 제 역할을 못해주다보니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시간을 갈수록 이해 당사자들 간에 첨예하게 충돌하는 양상만 나타나고 있다. 그 혼란 속에서 수술이 늦어질까 아니면 아예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속태우는 건 환자의 몫이다. 그저 병원 밖으로 나가는 의사를, 그리고 그 의사를 밖에서 내모는 정부를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이제 우리 사회는 이전과 같은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건강보험재정 고갈을 논의할 수 있는 장(場)도 사라지다시피 됐고, 의료수가 조정 문제도 기존의 틀을 완전히 다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을 조정해주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잘 보여주었다. 정치는 단순히 많은 사람의 지지를 이끌어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까지 해줘야 한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자 우리가 정치권에 기대하는 바다. 정치가 조정역할을 해주는 본연의 임무로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yunshi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