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최대주주 변경에 번복공시까지…코스닥 '밸류업' 망치는 불성실 상장사

올해 코스닥 75곳 최대주주 변경
유상증자 약속 깨고 손절 잇달아
잦은 정정공시에 징후 파악 어려워
투자자 보호 실질 대책 마련 시급

빅데이터·인공지능(AI) 컨설팅을 주 사업으로 영위하는 비투엔은 지난 2021년 스팩합병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진입했다. 이 회사 창업자는 지난해 증시 입성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30%에 달하는 지분을 매각하고 최대주주에서 내려왔다. 약 300억원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새 주인을 맞은 이 회사는 즉각 이사회를 열어 15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예고했다. 이윽고 유전자 사업을 영위하는 비상장회사에는 사업확장을 이유로 회삿돈 50억원을 한 번에 투자했다. 증시 입성 이후 줄곧 맥을 못추던 주가는 최대주주 변경 안팎으로 상장 당시 수준 주가를 되찾았다.

하지만 해를 넘기면서 회사 사정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당초 새 주인과 함께 창업자 지분을 인수하려던 재무적투자자(FI)는 잔금 지급을 열 차례 가까이 미뤘고, 현재까지도 잔금 약 80%는 미지급 중이다. 결국 지난해 이 회사는 회사 자기자본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당초 유상증자를 예고했던 최대주주는 22일도 공시를 정정해 투자자에서 빠졌다. 지난 7일에는 두 건의 전환사채(CB) 납입 기일을 6개월 넘게 연기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 앞으로 새로운 투자자가 실제 투자금을 납입할지, 창업자 지분 매매대금을 과연 지급할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비투엔만의 사례는 아니다. 코스닥 상장 이후 창업자가 떠난 상장사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 번 창업자의 손을 떠난 회사는 새로 맞은 주인과 함께 사명을 바꿔 신산업을 벌이고, 회사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일은 끊이질 않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 최대주주가 바뀐 코스닥 기업만 총 75개사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75개사)으로 비교해도 이미 손바뀜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1년간 최대주주가 두 번 이상 바뀐 코스닥 상장사는 총 17개사다.

지난 10일 셀피글로벌주주1호조합으로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한 셀피글로벌은 창업주 손을 처음 떠난 2022년 이후 총 5번이나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거래정지 상태다. 셀피글로벌을 비롯해 최근 1년간 최대주주가 두 번 이상 바뀐 17개 기업 가운데 8개 종목은 관리종목·투자주의환기종목 또는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거래가 정지돼 있다. 창업자가 손을 뗀 뒤 껍데기만 남은 기업이 상장 시장에서 사실상 '좀비기업'처럼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최대주주의 잦은 변경은 상장폐지를 우려할 만한 징후로 공공연히 지목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2년 '최근 상장폐지기업의 사전징후에 따른 시사점'이라는 자료에서 상장폐지 기업의 대표적인 비재무적 특성으로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꼽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상장폐지에 이른 75개사 가운데 35개사에서 총 78건의 상장폐지 직전 년도 최대주주 변경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상장사 최대주주 변경만으로 특정 기업을 '좀비기업'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다만 비정상적인 최대주주 변경의 경우에는 통상 자기자본 대비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발생하거나, 대규모 현금이 각종 투자활동을 이유로 회사에서 빠져나가는 등 징후가 나타난다. 하지만 발행공시 한 건에도 수십건이 넘는 정정공시가 발생하는 탓에 면밀한 징후 파악은 쉽지 않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애당초 작전주 또는 이른바 '잡주'에 들어가는 투자자 다수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한 탕을 노리고 투자하는 만큼 조심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매일같이 좀비기업의 정정공시가 수십건씩 쏟아져 상황에서 시늉 뿐인 밸류업보다는 실질적인 건전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코스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이은 최대주주 변경에 번복공시까지…코스닥 '밸류업' 망치는 불성실 상장사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