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박해수, '벚꽃동산 무대서 마주한 연기인생 벚꽃'(종합)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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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쌓여있었던 감정들을 풀어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짜 박해수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적치유는 확실한 것 같다.” 배우 박해수가 '벚꽃동산' 막바지의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2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라운지 M에서 오는 7일 종연할 연극 '벚꽃동산' 출연중인 배우 박해수와 만났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동명 고전을 연출가 사이먼 스톤의 호흡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십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재벌가 여성 송도영(전도연 분)이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과 '벚꽃동산'에서 가족을 마주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박해수는 '벚꽃동산'의 원 주인인 송도영의 아버지가 부리던 운전기사의 아들이자, 신흥 사업가인 '황두식'으로 분했다. 이해득실에 민감한 현실적 성격이면서도, 과거의 일들에는 순수함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인물정서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모습이 돋보인다.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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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첫째 딸 강현숙(최희서 분)을 비롯한 송도영 패밀리들의 각기 다른 면모 속 자신의 이야기를 곧게 던지는 모습과 함께, 후반부에서의 적극적인 현실반전을 표현하는 박해수 표 황두식의 모습은 캐릭터의 과감함과 함께 그의 흡인력있는 연기감각을 느끼게 한다.

또한 송도영과 송재영(손상규 분) 등 주요 캐릭터 접점에서의 안정적인 호흡은 연극출신 배우로서의 탄탄한 내공을 느끼게 한다. 박해수는 인터뷰동안 '벚꽃동산'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캐릭터와 동료들에 대한 높은 이해와 동질감을 함께 드러냈다.

-안톤 체홉의 공연을 많이 해봤는지? '벚꽃동산' 출연계기?

▲ '벚꽃동산'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갈매기와 세 자매를 해봤다. 특히 갈매기는 역할도 여러가지 해봤지만, 무대감독으로서도 노력했다.

평소에도 안톤체홉 특유의 희비극성과 여러 군상들의 얽힘을 좋아했다. 그런 상태에서 사이먼 스톤이 '벚꽃동산'을 연출한다 했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전도연 선배와 무대호흡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에도 특별했지만, 작품과 연출에 있어서의 기대감도 출연을 이끌었다.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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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식 캐릭터의 설정?

▲1주일 정도 사이먼 스톤이 내한, 배우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원작의 로빠엔과 제 삶을 이야기하게 됐다. 원작 속 배역과 제 공통점 가운데서 자연스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제 스스로의 결핍과 인정욕구들을 털어놓게 됐다.

저 뿐만 아니라 출연캐릭터 하나하나가 대본상의 이미지들은 물론, 각자의 내면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담겨있다. 캐릭터명을 쓸 때도 많이 배우지 못한 캐릭터의 아버지 관점에서 '먹고 살라'는 생각을 가졌으리라 생각하고, '황두식'이라 지었더니 바로 승낙하더라(웃음).

-쪽대본 식의 독특한 사이먼스톤 연출법, 어땠나?

▲인터뷰 이후 출국하고 나서 사이먼과는 줌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틀을 갖고 배우를 관찰하면서 완성해나가는 사이먼의 연출스타일에 맞게 마이크세팅이나 화면까지 직접 소통하는 듯한 구도로 바꿨다.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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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가운데서 제 연기를 좋아하는 듯한 모습이 비쳤다. 물론 현장에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들어봤을 때 대본이나 계획에 의지하지 않고 손상규(송재영 역) 형님이나 전도연 선배(송도영 역)부터 최희서 배우(강현숙 역)를 비롯한 막내들까지 모두와 엮어질 수 있는 그러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관객으로 온 동료배우와 지인들도 그러한 연출법과 한국식 치환 등에 대해서 많이 묻더라.

-“무대 거듭할수록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던 '벚꽃동산'. 현 시점에서 어떤 완성도를 지니고 있나?

▲구성원으로서 온전한 모습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내면에서 제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많이 느껴진다. 일례로 “전부 다 부숴버려”라는 마지막 대사에 있어서도 초반때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련하게 던졌는데, “정치인 선언처럼 하라”는 사이먼의 말을 듣고 바꾼 지금은 그 다음 감정들도 남아있고 달라진다. 이처럼 현 시점에서의 '벚꽃동산'은 틀을 남기고 감정으로 채워지는 불완전성과 함께 공간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다듬어지는 것 같다.

-박해수가 보는 황두식?

▲가장 현실적인 인물인 줄 알았는데, 거듭될수록 과거에 가장 집착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극한경험들을 털어내기 위한 애증의 관점으로 집안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이 자신을 향한 무시로 인해 증오로 바뀌고 울분으로 터져나온 게 아닐까 한다. 그러한 캐릭터의 모습은 현실 저와 꽤 닮아있다. 서툰 사랑표현들은 물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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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가 허용되기 어려운 연극무대, 매체연기 물오른 이후의 현재는 어떤지?

▲최대한 없어야 하지만 작은 실수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치환해서 쓰거나 하곤 한다. 다만 큰 실수는 실수 그 자체로 두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번 공연 처음에 “회사를 여러조각 나눠서 팔면 된다”라는 식의 대사에서 큰 실수를 했는데, 모두가 준비하고 있었다 싶을만큼 수월하게 넘어갔다. 상규 형님, 도연선배 등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27년만의 연극무대에 돌아온 전도연을 필두로, 손상규·최희서 등 실력파 배우들이 즐비한 '벚꽃동산'. 배우 간 교감은?

▲한 공연이나 영화로도 쉽지 않은데, 무대에서 전도연 선배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작품을 선택했었다. 그렇게 결정했는데, 출연자 모두가 처음 뵙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소속사 박유림 배우 역시도 그랬다. 이렇게 끈끈하게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이먼 스톤의 연출을 믿고 인정하면서 전체적인 앙상블을 이뤄간 덕분에 더욱 관계가 깊어진 것 같다.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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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식과 박해수의 교점이 많다면, 연기하면서 털어낸 감정들도 있었을 텐데?

▲연기하면서 제 스스로 쌓여있었던 감정들을 발견하고 풀어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짜 박해수의 것인지, 황도식의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적치유는 확실한 것 같다.

-매체연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박해수, 연극행보를 유지하는 이유?

▲무대든 매체든 시나리오나 대본에 기대서 연기하는 편이고, 그 안에 있는 캐릭터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갖고 있다.

이번 '벚꽃동산' 역시 전도연 선배와 사이먼 스톤에 대한 궁금증이 발을 이끌었다. 많은 매체연기와 함께 무대경험 또한 이어가고 싶다.

-차기작 행보?

▲다양한 작품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와 함께 무대로서의 행보 또한 검토할 것이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