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 6000여 명이 사살된 '마약과의 전쟁'으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2016~2022년 재임)이 체포됐다.
11일 AP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대통령실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발부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 체포 영장을 집행,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ICC가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 대해 정식 조사에 착수한지 3년 여 만에 그를 실제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ICC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이던 2011년부터 대통령 재임 중인 2019년까지 마약 단속을 명목으로 벌인 대규모 살상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으로 유명하다. 그는 다바오시 시장 시절 자경단을 조직해 재판 절차없이 1000여 명의 범죄자를 처형하고, 이 도시의 범죄율을 크게 줄어들어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대선 출마 당시 '6개월 내 범죄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임기 당시 마약 복용자나 판매자가 곧바로 투항하지 않으면 경찰이 사살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는 취임 한달 여만인 2016년 8월 “나는 그들(마약 범죄자들)을 학살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두테르테 재임 기간 동안 사망한 용의자만 약 6200명에 달한다. 다만 ICC는 사망자 수를 최소 1만 2000명에서 최고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ICC는 이 가운데 증거도 없이 무고하게 살해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은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필리핀 의회의 마약과의 전쟁 조사위원회에 출석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앞으로 ICC에 신병이 인도되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법정에서 재판받게 된다. 다만 그를 구금한 필리핀 경찰이 그를 언제 ICC에 인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편, 이번 두테르테 체포는 신구권력 간의 정치적 대립의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마르코스 대통령 측과 두테르테 측은 좁힐 수 없는 견해 차이로 동맹관계를 청산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