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은 금융 낙후국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금융의 디지털화가 본격화되면서 지금은 디지털금융(핀테크)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기준 중국의 핀테크 시장 규모(간편결제 기준)는 무려 4.6조 달러(6,532조 원), 시장 성장률도 지난 10년간(2015~2024년) 연평균 27.9%의 급성장세기 때문이다. 핀테크 투자액도 2020년 앤트 파이낸셜(알리바바 계열) 등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진 대단해서 2018년엔 255억 달러로 세계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핀테크 업체 수는 4천 개 이상,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92개,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 달러 이상)도 2개여서, 미국에 이어 세계 핀테크 2위라는 게 대다수 의견이다.
낙후됐다가 단기간에 강국으로 탈바꿈하게 된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첫째, 모바일·인터넷 이용자의 폭발적 확대와 엄청난 디지털 소비자 기반을 꼽는다. 중국은 모바일·인터넷 이용자가 2024년 기준 1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난 데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도 무려 5억 400만 명, 중국 총인구의 33.7%다.
둘째, 정부의 적극적인 핀테크 육성 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2020년 빅테크 규제 전까진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는 '先 허용 後 보완'이었다. 한마디로 명시적 규제만 없으면 뭐든 할 수 있어서, 그만큼 핀테크 혁신과 핀테크 산업 성장이 빨랐단 얘기다.
셋째, 전통 금융의 '미발달'도 아이러니칼하지만, 핀테크 성장을 돕는 데 한몫했다. 2020년대 초만 해도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약 16%, 은행 계좌 보유율도 60%대로 낮아서, 이 공백을 핀테크가 메꾸면서 급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텐센트의 위챗페이 등 대형 플랫폼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도 중국 핀테크의 급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어떤 분야가 활발한가. 간편결제 분야가 거래액(일 평균 2191억 달러)과 사용자 수(10.3억 명) 측면에서 모두 압도적이다. 글로벌 간편결제 전체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올 정도로 중국인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표준은 QR코드 기반, 대부분이 모바일 앱을 통한 온·오프 결제와 송금이다. 대표적 기업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만 합쳐도 90%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인슈어테크도 활발하다. 중국의 인슈어테크 시장은 2024년 기준 85억 달러(12조 원)로 지난 5년간(2020~2024년) 연 성장률이 무려 48.7%였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대형 IT 기업들의 경쟁적인 인슈어테크 진출과 IoT(사물인터넷)·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혁신상품 개발이 급성장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대표 기업은 알리바바, 텐센트, 평안보험이 공동 출자한 중안보험, 워터드롭(Waterdrop) 등이다. 중안보험은 기업 가치가 설립 3년 만에 유니콘(80억 달러)에 등극했고, 워터드롭은 보험마켓플레이스와 크라우드펀딩을 결합한 독특한 모델로 유명하다.
급성장했다가 급격히 위축된 P2P도 관심 대상이다. 2020년 한때 630억 달러(89조 원)까지 시장 규모가 확대됐으나, 그 후 금리상승과 궈진바오(國金寶)와 같은 업체의 '야반도주(먹튀)'로 인한 신뢰 추락으로 시장이 20분의 1 수준인 2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업계에선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재차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7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P2P '파이파이따이(拍拍贷)', 미국 렌딩클럽 공동창업자가 참여한 디엔롱왕(点融网)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 중국의 벤처·창업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젊은 층의 자금운용 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도 연 10~20%로 비교적 빠른 성장세다.
중국 핀테크는 2020년 이후 중국 정부가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면서 다소 위축됐지만, 지난 2월 시진핑 주석과 민간기업의 좌담회 때 알리바바 마윈 회장 등의 복귀를 계기로 다시 활성화될 거라는 의견이 많다. 향후 10년간 15~20%의 고성장 전망인 만큼, 앞으론 한·중 핀테크 업계의 협력 및 상호 진출 등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