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라는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일 뿐이다.”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금융이 특이점 시대에 접어든 것 처럼 세계경제 질서 역시 특이점 시대에 들어섰다. 관세를 앞세운 미국이 보호주의로 회귀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고 이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직 관세협상을 타결 짓지 못해 경제의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지난 9월 17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금리인하에도 환율은 오히려 1400원대를 향해 반대방향으로 오르고 있다.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관세를 잘 쓰면 많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관세(tariff)야 말로 영어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미국이 향후 관세를 전략무기화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아니었고 이 선언은 취임 직후 스스로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고 이름을 붙인 지난 4월 2일 전 세계를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는 실행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세계경제는 물론 미국에도 득 될 게 없다고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 상당수도 보수주의의 정신적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무원칙적인 태도와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비판이야 말로 경제학책 속의 관세와 트럼프의 관세를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책 속에 있는 리카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은 각국은 자신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에 특화함으로써 국제적 분업을 촉진하고 이것이 세계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높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나라가 이익을 얻기 때문에 관세는 백해무익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관세이론이고 그동안 자유무역체제를 옹호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의 지탱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리가 자신의 관세정책이 수출하려는 국가의 수출가격 책정에 영향을 줄 만큼 충분히 큰 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역 파트너들의 보복관세를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지렛대를 갖고 있는 초강대국이라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보다 적절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해 교역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무역이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 지정학적인 패권경쟁의 의미로까지 확대된다면 경제 안보를 확보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관세의 무기화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관세라는 망치를 들고 있는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일 뿐”이라는 전 미국 국가안전보좌관 존 볼턴(John Bolton)의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제조업 부흥을 노리는 전략은 물론 나아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브릭스로 기울고 있는 인도에 대한 견제, 자신과 같은 정치노선을 걷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Javier Milei) 지원,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그 결과인 극심한 불평등을 용인해온 그간의 엘리트 집단(Deep State)에 대한 저항 등 거의 모든 국내외 현안을 마주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라는 망치를 들고 나왔다. 트럼프의 관세는 경제적 목표(더 나은 교역 조건), 외교적 고려(경제 안보), 정치적 의제(공정성과 분배)가 모두 뒤섞인 정책이자, 정치 레토릭이자, 문화 코드이기도 하다.
트럼프 2.0 이라는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작금의 트럼프 2.0 시대는 이전의 트럼프 1.0 시대보다 더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모순은 일상이 되고 있고 예측불가능성은 새로운 뉴노멀로 자리잡았다. 거의 매일 예기치 못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이 주장하는 우리가 아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한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트럼프가 4년 뒤 임기를 마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비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년이지만 그 기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기 때문에 예측불허한 상황임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철학과 정책 접근방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시도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 한달전쯤 히미노 료조 (氷見野 良三) 일본중앙은행 부총재가 일본 북부의 홋카이도에서 행한 작은 연설이 일부 글로벌 지식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는 세계적인 지식인들조차 감히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 2.0 행정부의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세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 경제, 문화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모두 하나의 불가분한 정책 의제로 다루는 총체적 접근을 취한다는 점이다. 둘째, 상황에 따라 전술적 결정은 매우 유연하게 대처하지만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목표에 대한 전략적 선택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통념과 정설에 얽매이지 않는 비정통적인 사고로 힘의 위치와 근원을 규정하는 사실들에 주목하며, 지금까지 활용되지 않았던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고 관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방식은 현재 한국과 관세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이 태도에서 그대로 읽히고 있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와 같이 관세 부과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기존 현안사항인 환율조작을 하지말라는 압박과 더불어 전혀 관련이 없는 3500억달러에 달하는 새로운 요구 사항을 패키지로 들고 나오고 있다. 즉 관세를 통해 국내산업의 보호는 물론 관세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하지 말라는 압박과 함께 관세가 자국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국내 투자 재원을 상대국에 떠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한편으로는 투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무장관 러트닉(Howard William Lutnick)의 말처럼 흑백의 문제로 고관세율을 받을지 아니면 미국이 제시한 투자 조건을 수용할지를 택일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즉 전술은 유연하지만 전략적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측이 협상을 요구하는 투자 조건에 대응하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듯이 투자는 “선불”이라고 보다 근본적인 원칙을 건드리면서 이 문제를 결정할 힘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위와 같은 분석도 참고해서 국익에 부합한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라는 그동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유럽연합(EU) 경제전문가 모레노 베르톨디와 마르코 부티는 현재 세계는 약탈적(extractive)으로 성격이 바뀐 미국과 점차 다른 나라가 의존(dependency)을 더 하도록 만들고 있는 중국 등 두개의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반갑지 않은 글로벌 질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이처럼 단순히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개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질서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금 겪고 있는 이른바 트럼프 현상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증거 내지는 증상(symptom)이지 글로벌 질서를 흔들고 있는 문제의 근원(cause)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초등학생들을 초청해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한 학생이 “대통령으로서 언제 가장 힘들고 기쁜지”라고 묻자, 대통령은 잠시 생각한 뒤 “대통령이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데 그 지킬 힘이 없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는데 필자에게는 작금의 글로벌 질서에서 힘으로는 밀릴 수 밖에 없는 초강대국과의 협상과정에 느낀 소회로 느껴져 짠한 마음이 들었다. 구윤철 부총리, 김용범 정책실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경험많은 참모들과 함께 이 위기 상황을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