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빈집 월세만 2억…현장 지킨 남편의 집념, 아내 살해범 잡았다

1999년 11월 살해당한 다카바 나미코(왼쪽)와 남편 사토루 타카바의 현재 모습.  사진=FNN
1999년 11월 살해당한 다카바 나미코(왼쪽)와 남편 사토루 타카바의 현재 모습. 사진=FNN

일본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였던 '나고야 니시구 30대 주부 피살 사건'의 용의자가 26년 만에 체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는 피살 현장에 남은 혈흔 DNA와 함께, 범인을 잡기 위해 26년간 사건 현장의 월세를 지불하며 집념을 지켜온 피해자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이었다.

나고야 니시경찰서는 지난 10월 31일, 1998년 11월 당시 32세였던 주부 다카바 나미코를 살해한 혐의로 야스후쿠 쿠미코(69)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1998년 11월, 나고야시 니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외출 중이던 남편 다카바 사토루(현 69세)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아내 나미코는 아파트 현관에서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더욱 참혹했던 것은 당시 두 살배기 아들 코헤이 군이 켜진 TV와 멈춘 청소기 옆, 어머니의 시신 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건 현장에서는 피해자와는 다른 혈액형의 혈흔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서 수사는 장기 미궁에 빠졌다.

사건이 미제로 남을 위기에 처하자 남편 사토루는 남다른 결단을 내렸다. 바로 아내의 피가 남아있던 사건 현장 아파트를 26년 동안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경찰 수사를 위한 '증거 보존실'로 사용하며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지불했다. 지금까지 26년간 사토루가 월세로 지불한 총액은 2200만엔(한화 약 2억여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토루는 장기 미제 사건 피해자 유족들과 함께 공소 시효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을 주도했고, 이는 2010년 일본의 살인죄 공소 시효 폐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26년 만의 극적인 해결은 아이치현 경찰의 재수사와 DNA 기술 발전에 힘입었다. 경찰은 현관에 남은 범인의 혈흔 DNA를 단서로 수만명을 조사하던 중, 용의자 야스후쿠 쿠미코를 수사 선상에 올렸다. 야스후쿠는 DNA 제출을 거부하다가 결국 제출했고, 지난달 30일 자수해 범행을 시인했다. 충격적이게도 야스후쿠는 피해자 남편 사토루의 고등학교 동아리 동급생이었다. 고교 시절 사토루에게 호감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토루는 언론 인터뷰에서 고교 졸업 후 1998년 동아리 동창회에서 한 차례 만난 것이 전부였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나미코와의 접점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에 사토루는 “졸업 후 교류가 없어 깜짝 놀랐다. 아직 얼떨떨하지만 범인을 잡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이제 방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26년 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며 맺혔던 한을 풀었다. 경찰은 현재 야스후쿠 쿠미코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경위와 동기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