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경의 SF 프로토타이핑] SF 프로토타이핑 AI 시대,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윤여경의 SF 프로토타이핑] SF 프로토타이핑 AI 시대,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AI 공모전 금지, 실효성 없는 선언에 그칠 것인가

“문학에 스며드는 AI···공모전 당선을 취소합니다?”(경향신문 12.30)

최근 문학계는 공모전에서 AI 활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리서치는 허용하되 제작은 금지'라는 가이드라인은 현실적으로 그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AI의 초안을 바탕으로 문장을 다듬고 재구성했을 때, 이를 기술적으로 판별할 완벽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리 구조를 잡는 것, 캐릭터 설정을 조언받는 것, 문체만 교정하는 것 중 어디까지를 '제작'으로 볼 것인가? 결국 규칙을 지키는 양심적인 창작자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인 집필에서 AI 감독(Manager)의 시대로

오늘날의 창작은 이미 변모하고 있다. 글쓰기 기초 역량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AI를 더 정교하게 지휘하며, 초보자보다는 숙련된 전문가들이 AI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창작자는 점차 모든 것을 혼자 쓰는 '1인 집필자'에서 AI를 도구로 부리는 '감독 레벨'의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매체 변혁의 역사: 구술에서 문자로, 그리고 AI로

이러한 혼란은 사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었던 진통이다. 고대 인도의 베다 경전은 신성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수천 년간 문자 기록을 거부하고 오직 사제들의 구전으로만 보존되었다. 플라톤조차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를 위해 자신의 철학을 딱딱한 논문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대화체로 남겼다. 당시 사람들에게 암기하지 않고 '책'에 의존하는 행위는 지금 우리가 AI에 의존하는 것만큼이나 지적 능력을 퇴화시키는 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자는 인간의 사고를 확장했다.

사이보그가 되어가는 인간, 모호해지는 '나'의 경계

이제 인간이 홀로 글을 쓰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우리는 일종의 '사이보그'처럼 AI와 결합하여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는 변곡점에 서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예견했듯, 미래에는 인간의 신피질이 클라우드 속 인공지능과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정체성의 질문을 마주한다. 나의 생각과 AI의 연산이 실시간으로 결합한다면, 그 결과물은 누구의 것인가? 2023년, 한국 최초 ChatGPT 협업 소설집 『매니페스토』를 비롯한 다양한 실험들이 등장했다. AI로만 쓴 소설과 인간이 AI와 협업하여 쓴 소설을 시도하는 과정은, 결국 '나'라는 주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인지 능력이 클라우드와 연결되어 확장되는 '포스트 휴먼'의 창작 방식이 시작되고 있다.

2022년, 인류 최후의 '순수 문학'을 기록하라

필자는 2023년 ChatGPT 대중화 이전에 쓴 작품들을 보존해야 하라고 권하곤 한다. 인간이 외부의 도움 없이 오직 고독한 사유와 신체적 고통을 통과하며 홀로 써 내려간 문학은, 그 자체로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은 인류의 지성사가 '인간 독점적 창작'에서 '기계와의 공진화'로 넘어간 거대한 분기점이다. 여태까지 과학기술은 스스로 태어나지 못했다. 언제나 인간의 필요와 상상력에 의해 빚어진 피조물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가이드를 넘어 스스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독자적으로 예술 작품을 잉태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작가 되기, 왜 이것이 생존의 문제인가

필자가 모든 사람이 작가되기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이유는 단순히 문학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담론을 주도하는 '주인공 역할'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소설 『당신의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문학동네, 2025, '멋진 실리콘 세계' 중)에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전환되었을 때 인류의 '하드웨어'가 바뀐 시대였다면, 지금은 '소프트웨어', 즉 정신이 바뀌는 시대라고 쓴 바 있다.

인류가 지동설을 받아들이며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쇼핑과 쇼츠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신 결정해 주는 시대에 우리는 개인의 감정과 기준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집단 지성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를 실행하려면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명상과 침묵, 그리고 나만의 길을 선택하는 주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SF 프로토타이핑: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으로: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SF 프로토타이핑은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건설하는 '집단 담론'의 도구다. 유토피아(물질적 사회)에서 유크로니아(정신적 사회)로의 전환. 이 전환의 중심에 서려면 과학기술이 점령한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자가 인문학적 서사를 상상하고, 소설가가 과학적 팩트를 기반으로 미래를 재현하는 교차 학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양성 과정에서 일부 작가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하고 있고 과학기술자 배경을 가진 작가는 기술에 대한 맹점들을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필자는 AI 시대에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모든 사람이 작가되기를 제안한다. 저차원적인 부분은 이미 인공지능에게 대체당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인생의 시나리오를 쓰기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AI가 설계한 거대한 시스템 속의 엑스트라로 전락할 것이다.

홀로 골방에서 쓰는 시대는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으로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를 질문하고,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집단 지성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되어 깨어있을 때, 우리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막고 진정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윤여경

윤여경미래 담론 디자이너이자 비영리 문학단체 퓨쳐리안 대표. 2016년 제3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고, 2023년 제6회 CISFC 국제교류 공로 훈장을 받았다. 한국 최초 ChatGPT 협업 소설집 『매니페스토』, 아시아 설화 SF 프로젝트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등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40여 명의 신인 작가 데뷔를 이끌었다. 현재 SF 창작 강의와 집필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는 다양성 문학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