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AI)을 두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정확성'이다. AI가 틀린 답을 내놓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환각 현상을 보일 때, 많은 이들은 '신뢰할 수 없는 기술'이라며 냉소한다. 이는 AI의 가치를 오직 '정확한 정보 전달'에만 두는 고정관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인간의 대화를 떠올려 보자. 대화의 가치는 참여자의 말이 얼마나 정확한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화하며 오해하고, 과장하며, 때로는 틀린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대화가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는 상호작용 속에서 각자의 인식이 조정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행위는 사전을 찾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AI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사유의 촉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사고를 이미 존재하는 생각의 복제(재현)가 아니라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생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의 답변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이차적인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답이 나의 기존 사고 배치를 얼마나 흔들고, 전혀 다른 방향의 사유를 촉매했느냐다.
실제로 AI와의 문답은 '외부화된 사유 과정'이다. 혼자 생각할 때 머릿속에서 뭉개져 있던 언어는 질문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가 AI의 답변이라는 낯선 형태로 되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전제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가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AI의 답변이 다소 어긋나 있거나 부정확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고를 낯설게 만드는 장치가 돼 보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부정확성'의 가치
물론 모든 영역에서 AI의 오류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 의료, 정책 결정처럼 오류의 비용이 치명적인 분야에서 AI의 부정확성은 분명한 위험 요인이다. 하지만 아이디어 구상, 전략 탐색, 자기 성찰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확한 정답이 아니라 가능한 생각의 경로를 얼마나 넓게 여느냐다. AI가 만들어내는 다소 엉성한 문장이나 과장된 표현들은 인간이 선택하고 수정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빚어내는 원료가 된다. 전략을 수립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맞히는 것보다 우리가 어떤 위험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AI의 다양한 언어적 변주는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훌륭한 파트너가 된다.
◇ '앤서 머신'을 넘어 '대화의 파트너'로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정확한가보다 그 답변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움직였는가에 있다. 인공지능을 오직 정확한 답변 생성기로만 한정하는 순간 우리는 언어와 사고가 가진 훨씬 더 중요한 기능을 놓치게 된다. AI의 진짜 의미는 그가 언제나 옳은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 이래 언어를 통해 진리를 완벽하게 획득하기 위해서만 대화하지 않았다. 서로를 오해하고 수정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서 있던 인식의 지형을 조금씩 바꿔왔다. AI와의 대화 역시 이 오래된 언어적 여정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제 AI를 정답만 내놓아야 하는 '앤서 머신(Answer Machine)'이 아닌 사유를 함께 확장하는'대화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AI의 환각을 기술적 결함으로만 치부하기보다 그것이 우리 사고에 주는 마찰과 자극에 주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실리콘 지성과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박세용 어센트AI 대표
강성전 기자 castle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