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가 일본 기린맥주와 손잡고 '기린 이치방 시보리(一番搾り)' 제품을 한국에서 만든다. 기린과 자본관계가 없는 수입 유통사가 라이선스 생산에 나서는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20년간 이어온 양사 협력이 단순 유통을 넘어 생산·기술 영역으로 확장됐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8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통합연구소에서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국내 생산 개시와 양사 간 기술 협력 및 중장기 파트너십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7월 기린과 기술제휴협정을 체결하고, 전주공장에서 캔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린 이치방 시보리는 맥아에서 첫 번째로 짜낸 맥아즙만 사용하는 제법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맥주 제조 방식과 달리 첫 맥아즙만 활용하기 때문에 맥아 본연의 진하고 풍부한 맛을 구현한다.
양사는 앞서 1년 이상 기술 교류를 진행했다. 기린 고유의 제조법과 원료·공정·품질관리 기준을 하이트진로 전주공장 생산설비에 적용했다. 기린에서 직접 공급받은 효모를 한국에서 배양하고, 일본 현지 제품과 맛·향이 같은지 확인하기 위해 세 차례 이상 시험 생산과 평가도 거쳤다.
초도 생산량은 약 150만ℓ다. 500㎖ 캔 기준 300만개 규모다. 하이트진로는 내년까지 기린 이치방 시보리 전체 국내 판매량 가운데 약 75%를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기존 수입 제품 운송·통관에 통상 한 달 반가량 걸리던 기간은 국내 생산을 통해 1~2주로 단축된다. 국제 물류 차질이나 일본 현지 공급 여건 등 대외 변수의 영향을 줄여 수요 증가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효과다.

권광조 하이트진로 프리미엄권역장은 “(이치방 시보리 국내 생산은) 수익성보다 안정적인 공급에 중점을 뒀다”면서 “운송료 절감으로 확보되는 여력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혜택을 돌려주기 위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적극적으로 재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수입 맥주 시장은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하지만 일본 수입 맥주는 2022년 이후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2020~2026년 연평균 성장률은 82.4%로 추산했다. 2025년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이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진로는 별도 생산설비 증설 없이 전주공장의 기존 설비를 활용해 기린 이치방 시보리 생산을 시작했다. 향후 판매 확대 여부가 추가 투자와 협력 범위를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양사는 당장 한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병·생맥주로 확대하거나, 타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은 구체화하지 않았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대표는 현장에서 “이번 기술 협정은 단순한 생산 현장의 이전이 아닌 한층 더 발전된 기술과 품질을 만들어가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시작이 될 것”이라면서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까이에서 새로운 브랜드 경험과 가치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