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올바른 평가방식이 왜 중요한가

[과학산책]올바른 평가방식이 왜 중요한가

국가의 흥망이 과학에 달려 있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이 됐다. 국제적 수준의 최상위권 대학이나 과학노벨상 등에 모두 목을 매고 있지만, 이 거시적 목표 달성에 퀀텀점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10년 후 과학수준은 지금 중고등학생들의 과학적 호기심이나 열정, 실력의 연장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이상을 기대한다면 그건 요행수를 바라는 심보다.

학생들의 과학 실력을 증진시키고 그 방향을 잡아주는 것에는 대학입시만 한 것이 없다. 조선시대 유교가 지배이념이 된 것은 그것으로 국가고시를 치렀기 때문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도가적 관점으로 설을 푼 과거지원자가 합격할 리는 만무하다. 우리나라에서 반평생의 계층을 확정하는 대학입시 만큼 강력한 시험이 없다는 것은 좋든 싫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입시는 과학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임에 분명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의 평가제도에는 큰 문제가 있다.

사이언스나 네이처가 최고의 저널로 평가를 받는 이유는 깐깐한 평가에 있다. 평가자의 칼 같은 지적과 수정요구가 매우 구체적이고 타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연구자는 그 의도에 승복한다. 허접한 학회일수록 평가도 모호하고 부실하다. 도대체 평가자가 논문을 읽어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가는 결과를 받아보면 낙담 이전에 화가 난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합격하거나 불합격한 학생에게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허접한 저널심사 과정과 유사하다. 평가결과가 개선에 무용하다. 재수, 삼수생은 면접을 잘 보고 온 것 같은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막연한 심정으로 다시 해보는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주사위를 던져서 합격자를 결정할 때의 심정과 같다고 할까. 다음에는 짝수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 년을 다시 기다린다. 물론 입학사정관이 주사위와 같은 랜덤 프로세스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그 평가결과가 지원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입시에 소용되는 정열은 고스란히 낭비된다. 무엇 때문에 불합격을 했는지 평가내용이 전달돼야 학생은 반성, 반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면접 결과 ‘꿈’과 ‘끼’가 부족해서 탈락한 대와 복소수 문제를 틀려서 낙방한 때를 비교해보자. 꿈과 끼를 보강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면접관끼리도 합의되기 힘든 꿈과 끼, CEO적 자질을 어떻게 수험생에게 요구한다는 말인가.

나는 우연한 기회에 영재 관련 프로그램에 낙방한 중학생을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영재선발에서 면접 외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학생에게 왜 지난번 면접에서 낙방을 했는지 자신이 느낀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했다. 반 정도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다. 두 학생은 말투(사투리)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세 학생은 선행학습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믿었다. 한 명은 대답을 아주 잘했는데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면접에서 사투리나 선행학습 정도로 평가하는 기관은 없겠지만 무응답의 평가를 받은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계량 불가능한 느슨한 평가방식이 끼와 꿈을 살려주는 인문학적 상상력, 융합적 평가방법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갈수록 재수생, 삼수생이 늘어나고 있음은 작금의 깜깜이식 평가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에 관련된 모든 경쟁과 평가에는 그 결과가 공개되고 피평가자에게 전달돼야 한다. 평가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학습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입시라는 과정이 가지는 위력으로 볼 때 이 과정은 국가 과학적 지식의 총량증가와 참가자들에게 발전 기회가 돼야 한다. 사투리 때문에, 선행학습 부족이 낙방의 원인이라고 오해받는 방식이 지속되는 한 과학입국은 멀어져만 갈 것이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hgcho@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