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인터스텔라와 과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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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최근 ‘인터스텔라’라는 SF영화가 연일 화제다. 개봉 초부터 2위를 멀리 제쳐둘 정도로 열기가 높았고,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압도적 예매율을 이어가는 바람에 새로 개봉한 괜찮은 영화들이 그 기세에 눌려 빛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할 판이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작으로 영화팬들 사이에서 꽤 기대를 모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블랙홀, 웜홀, 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 등 내용이 만만치 않은 SF 영화가 6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모으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가을 개봉해 무중력 상태의 사실적 묘사와 뛰어난 영상미로 큰 화제를 모았던 ‘그래비티’도 입소문과 평단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300만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인터스텔라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이미 많은 인기작을 내놓았던 감독에게 공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다. 원작도 없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세 시간에 가까운 대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하게 만든 감독의 몫이 클 것이다. 그러나 SF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특징은 블랙홀 분야의 세계적 과학자 중 한명인 킵 손(Kip Throne)이 자문도 아닌 공동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유례없는 작품이다. 그 덕분에 영화의 과학적 설정이나 이론적 근거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됐다. 물론 물리학자나 우주론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킵 손이 자문을 한 것에 비하면 과학적 설정이 너무 허술하다며 실망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웜홀에 기반을 둔 항성 간 또는 은하 간 여행 가능성은 어디까지가 현실적이고 어디까지가 가설적인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게 마련이다. 또 영화에 묘사된 중력렌즈 효과로 빛나는 블랙홀의 모습은 지금까지 시각적으로 묘사된 것 중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그럴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으로 있음직한(probable)’ 설정을 기반으로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특수 효과가 결합해서 인터스텔라는 SF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감동인 ‘경이감(sense of wonder)’을 흘끗이나마 맛보게 해줬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받은 감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 ‘경이감’이었을 것이다.

SF(Science Fiction)는 말 그대로 과학적 허구다. 허구지만 다른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있을 법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삼는다는 뜻이다. 종말을 맞이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선다는 설정의 SF는 흔해빠졌지만, 웜홀이나 블랙홀, 거주 가능한 행성들의 모습 등을 있음직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제대로 시각적으로 구현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당수의 할리우드 SF영화들이 이런 과학적 세부 묘사에 인색하거나 그래픽으로 대충 처리하고 배경만 우주로 바꾼 우주 활극이나 연애담, 가족애 타령에 치중했다.

이와 달리 언젠가 우리가 다른 문명이나 행성을 찾아나섰을 때 펼쳐짐 직한 상황과 모습을 그려줄 때, 우리는 경이감과 함께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친숙한 지구 표면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나약하고 하찮은가? 이렇게 넓은 우주 공간에 우리만 있다면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

과학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경이감은 한 번의 감동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2000년대 이후 우리는 과학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지금도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이른바 과학문화 창달을 위해 꽤 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관이나 관변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위에서 아래로(top down)’의 문화 창달은 판에 박힌 축전이나 행사 위주의 전시행정, 실효성도 없는 외국 교수나 전문가 초청 강연 등으로 일관해왔다. 게다가 이런 기관들의 장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물들이 낙하산을 타고 임명됐다. 인터스텔라를 둘러싼 최근 움직임은 좋은 SF영화 한편이 천편일률의 과학 행사들보다 훨씬 큰 과학적 상상력을 일깨워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에 그치고 있는 SF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BK21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kwahak@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