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

37년.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다. 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은 20대 초반 정보통신공사업에 입문한 이후 한 길만 걸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뿌리산업에 종사한다는 자긍심도 남달랐다.

오랜 세월 동안 업계 환경도 그리고 정 회장 본인도 많이 달라졌다. 1980년대 초반 300여개에 불과하던 정보통신공사 업체는 9000여개로 늘었다. 20만명에 가까운 기술자와 감리원이 종사하는 우리 경제의 한 축이 됐다.

평범한 공사업체 직원이던 정 회장은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인천경기도회 회장, 협회 중앙회 이사, 공제조합 이사장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업계 발전에 힘썼다.

그리고 2월 9000여 정보통신공사 업체를 이끄는 협회 수장이 됐다. 정보통신공사협회는 회원사 이익 증진뿐만 아니라 공사업의 질적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향후 3년간 회장으로서 정보통신공사업계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게 정 회장의 소망이다. 누구보다 공사업을 잘 알기 때문에 안팎에 산적한 현안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인터뷰]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

◇성장률 반등에 업무 초점

정보통신공사업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설비를 구축하는 일이다. 1971년 공사업법 제정 이후 50년 가까이 인터넷 활성화, ICT 인프라 구축에 중요 역할을 담당해왔다. 우리나라가 ICT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숨은 공신이다.

정보통신공사업은 ICT 산업 발전에 힘입어 2014년까지 지속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5년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정보통신공사업은 2013년 2.7%, 2014년 5.0%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2015년 -1.0%, 2016년 -3.2%로 성장세가 꺾였다.

업계 전체뿐만 아니라 업체별 평균 실적도 줄고 있다. 공사업체당 평균 실적은 2009~2012년 사이에 연평균 2.7%씩 상승세를 유지했다. 반면에 2013년부터 점차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건설경기 둔화, 경제불황, 통신사업자 설비투자(CAPEX) 감소 등이 주요인이다.

정 회장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통신공사업은 ICT 인프라 고도화를 촉진하고 경제·사회 발전 기반을 구축해왔다”면서 “그러나 시장 포화, 발주처 시설투자 감소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회원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임기 동안 이들의 애로사항과 현안을 하나씩 풀어나가겠다는 게 정 회장의 각오다. 표준품셈 적용 확대, 분리발주 활성화, 해외진출 지원 등이 중점적으로 추진할 일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 시공기술 선진화 등 미래형 산업으로 공사업 체질을 개선하는 것도 주어진 임무 중 하나다.

◇표준품셈 확대 적용, 수익성 확대의 키

정 회장은 업계 수익성 확대를 위해 가장 먼저 표준품셈 적용 확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표준품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이 산정한 '품량'에 의해 적정 노무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경험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하던 노무 대가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산정할 수 있다. 정보통신공사업계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적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서는 표준품셈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보통신공사업법에 표준품셈이 '권고' 형태로만 명시돼 있고 별다른 제재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99% 이상 표준품셈을 따르는 공공기관과 달리 통신사업자나 건설업체 등 민간 기업은 수익성 등을 이유로 표준품셈을 따르지 않는다.

자체 노무비 산정 방식보다 표준품셈을 따르면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판단 때문이다. 겉으로는 표준품셈을 따르더라도 실제로는 예산에 맞춰 자체 방식으로 삭감해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정 회장은 “제재사항이 없으니 민간 기업은 표준품셈을 제대로 지켜서 공사를 수행하는 곳이 없다”면서 “전반적 국내 건설 단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것은 시공 품질보다 공사비를 중시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 꾸준히 제재사항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한편 통신사 등 발주기관을 상대로 꾸준히 품셈 적용을 홍보하고 있다”면서 “표준품셈은 업계 수익성 확대의 키인 만큼 적용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

◇분리발주로 공사업 독립성 확보

정보통신공사업 수익성 증대를 위해 표준품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분리발주다. 정보통신공사업법 제25조는 정보통신 공사를 건설 공사 또는 전기 공사 등 다른 공사와 분리해서 발주할 것을 규정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허공법 등 특수 기술에 의해 행해지는 터널, 댐, 교량 등 대형 공사로 분리 발주로는 책임 구분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는 예외 조항으로 명시했다. 예외 조항으로 인해 대전 갑천지구 아파트 건설, 대구 정부통산전산센터 등 대형 공사가 통합발주됐다.

통합발주로 인해 정보통신공사 업체는 재하청 업체로 전락, 품질 저하와 수익성 하락의 요인이 됐다. 공사업계는 협회를 중심으로 궐기대회 등을 개최, 국토교통부로 하여금 정보통신공사 통합 발주 시 근거와 사유를 제출하도록 하는 고시 개정(대형 공사 등 입찰 방법 심의 기준 일부 개정)을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분리발주는 헌법에 명시된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조항에 부합되는 제도로 정보통신 시공분야 기술 발전과 품질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개정안이 도입된 만큼 분리발주가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남북 경협에서도 분리발주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경협은 가스, 도로, 철도처럼 대형 공사가 주를 이를 전망이다. 대기업이 한 사업을 책임지는 턴키방식이 예상된다. 정 회장은 “ICT 분야 품질 확보를 위해 정보통신공사의 분리발주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략 수립

정 회장이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내건 공약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먹거리 창출과 사업영역 확대'다. 신기술과 기존 ICT가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지금이 공사업계의 기회이자 터닝포인트라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다.

그의 공약 이행을 위해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는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통신공사업 4차산업혁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교수, 전문 연구원, ICT 업체 대표, 정보통신공사업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정 회장은 “위원회를 통해 정보통신 융합 분야를 발굴하고 있다”면서 “관련 설계기준과 표준공법 등을 단계적으로 마련해 발주기관이 활용토록 하고 공사업계의 중장기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ICT 환경 변화에 따른 공사업 체질개선도 정 회장이 강조하는 항목이다. 첨단 ICT 환경을 구현하려면 낡은 공사기법을 버리고 신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공사업 종사자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정 회장은 “ICT 폴리텍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 준비를 위해 업계 기술자와 종사자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분석기법 등 전문교육 과정을 개설했다”면서 “종사자의 재교육을 통한 역량 강화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

◇해외 시장 진출 기반 마련

정 회장은 공사업계의 오랜 과제인 해외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보통신공사업의 해외 진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문화적 여건 등 한계로 인해 활발한 진출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 회장은 “포화된 국내 시장을 감안하면 해외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에 비해 해외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대형 건설사 등 대기업은 영업팀, 법무팀, 기술팀 등 지원 체계가 다양하고 인력이 풍부하지만 중소기업은 소수 인력이 모든 업무를 처치해야 한다. 현지 상황 파악부터 계약 체결, 이후 업무 진행까지 절차별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과기정통부와 해외진출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실효성 있는 정책지원을 이끌어내고 해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외에도 중소 회원사의 경영지원을 위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방지, 입찰조건과 참가자격 완화를 통한 수주 지원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도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정보통신공사업은 오랜 역사와 산업 규모, 정보통신 인프라 중요성 등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정보통신공사 전문성과 시공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사업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표〉정상호 회장 이력

[인터뷰]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회장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