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자동차 생태계 육성 정책, 지금이 타이밍이다

[데스크라인]자동차 생태계 육성 정책, 지금이 타이밍이다

전자산업이 성숙기에 들어선 10여년 전부터 국내 부품·소재·소프트웨어 업계 중장기 사업 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분야가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자동차용 소재, 자동차용 SW 등 ‘자동차용 ○○○’로 표현되는 자동차 후방산업이다.

‘자동차용 ○○○ 진출’은 전자산업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업체에는 그 자체가 사업다각화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 의지 표현이었다. 자동차 비즈니스는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분야다. 투자 부담이 크고 안전과 직결되는 부문이 많다. 따라서 일단 한번 시장을 뚫으면 안정적이지만 그 단계에 오르기까지 공을 들여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자동차 역사가 일천한 우리로서는 일본·유럽 업체에 대적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요즘 분위기가 급변했다. 전자업계 대외용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만 존재했던 것이 구체화되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도 빠르게 ‘자동차용 ○○○’ 분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LG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후방산업 진출을 그룹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했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LG이노텍 등 계열사 상당수가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전장부품, 디스플레이 등 분야에서는 후발국으로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겼던 선진국 극복 사례를 속속 내놓고 있다.

삼성도 자동차용 부품·소재 분야 사업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은 오랜 기간 자동차 분야 사업에 주목해 왔으나 공식화에는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포스트 스마트폰 전략’ 일환으로 자동차 분야 사업을 꼽고 있는 것은 숨기지 않는다.

기존 자동차 전장 부품업계도 탄력을 받고 있다. 자동차 부품 해외 수출규모는 최근 몇 년 두 자리 성장을 지속했다. 해외 완성차업체의 한국산 부품을 향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 납품 계약이 빠르게 늘고 있다. 주요 완성차업체가 부품 구매 전담 인력을 우리나라에 배치하면서 중소·벤처업계 납품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전자 부품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금의 위상을 갖추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TV·휴대폰 등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관련 부품업계에 기회가 찾아왔다. 출발은 늦었지만 새로운 방식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세트·부품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 바탕에는 정부의 강력한 산업 육성 드라이브 정책이 깔려 있었다. 전방산업과 후방산업 동반 성장 정책도 전자산업 생태계를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지금 자동차 분야에도 전자산업계 디지털 혁명에 버금가는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하이브리드카·전기차·스마트카·자율주행차로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 자동차 등장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전자산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자동차산업계에서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전방산업은 글로벌 5위권에 드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자동차용 소재·부품·SW 등 후방산업은 그 위상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산발적으로 논의됐던 자동차 전후방 산업 생태계 육성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적기다. 단기 목표와 미래 비전을 정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확실히 밀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물이 찰 때 노를 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