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 신용카드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당황스런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정확히 말하면 자동차 디자인을 파괴해 새로운 개념의 ‘택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상당수 언론사는 “왜 금융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들지?”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엉뚱한 생각은 2년이 지난 지금, 현대카드의 브랜드 파워가 어떻게 연결되고 업그레이드 됐는지 잘 알 수 있었던 사례로 평가된다.
왜 현대카드에서 자동차 ‘마이택시’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것도 ‘디자인 랩’이라는 곳에서 이 같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 팀의 지독한 녀석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이 정의하는 ‘디자인’에는 많은 고민과 철학이 있었다. 알리고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겉치레를 탈피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전문가 내지, 팀이라고 그들은 정의했다. 현대카드 출입금지 문을 열고 ‘디자인 랩’에 직접 들어갔다.
◇금융과 자동차의 콜라보…익숙함에 담긴 진실을 찾아서
2013년 5월, 현대카드는 기아자동차와 혁신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디자인 협업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콘셉트의 ‘택시’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로 자동차회사와 금융회사간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현대카드 ‘마이택시(MyTaxi)’는 현대카드 디자인 랩과 기아자동차 디자인센터가 공동으로 개발한 새로운 콘셉트의 택시다.
기아차 ‘레이’를 기반으로 현대카드와 기아자동차의 심플한 디자인 철학과 고객 중심 마인드를 반영해 제작한 콘셉트 자동차다.
마이택시(MyTaxi)는 ‘Small’ ‘Spacious’ ‘Smart’ 세 가지 콘셉트를 적용했다. 도시 교통에 어울리도록 작은 크기에 넓은 승객 공간을 확보했으며 모든 서비스를 승객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금융회사가 자동차 제조사와 협업해 신개념 택시를 만든 것 자체가 당시엔 큰 이슈가 됐다.
컬러는 화이트와 베이지를 기본으로 윈도 및 루프를 블랙으로 처리해 도시적 느낌을 강조했다. 또한 블루, 옐로우, 레드 세 가지 컬러로 승객의 탑승 및 예약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루프사인을 통해 명확하게 정보가 전달되도록 했다.
마이택시의 가장 큰 차별화 특징은 철저히 ‘승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두 회사 디자인팀에서 치열한 콜라보를 거쳐 탄생한 결과다. 이는 기존 제품의 단점을 파괴하고 과감한 형태의 완성차로 탄생됐다.
택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조수석을 과감히 제거하고 여행 짐이 많은 외국인 및 단거리 택시 이용이 많은 주부를 배려해 짐가방, 유모차 등을 편히 실을 수 있게 했다. 또한 9.7인치 승객 전용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외국인을 위한 6개 국어 지원, 자신의 위치 및 경로, 예상요금, 지역정보 등을 확인하고 에어컨, 라디오 등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디스플레이 옆에 설치된 카드결제기를 통해 교통카드와 현대카드 M포인트 결제도 가능하다.
여기에 마이택시는 승객의 보호자 및 가족까지도 배려했다. 가족, 애인을 배웅할 때 스마트폰으로 도어에 부착된 NFC(Near Field Communication)를 접촉하면 택시 및 기사정보, 실시간 운행 경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콘셉트카 ‘마이택시’는 2013년 5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 IT쇼에서 공개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국내외 처음으로 자동차회사와 금융회사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한 혁신적인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여러 곳의 지자체가 도입을 위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혁신 프로젝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카드는 마이택시를 활용해 직원용 음식 배달 서비스를 위한 택시투어를 진행 중이다. 마이택시를 이동형 음식점 형태로 개조해 도시락 배달 등을 제공하며 직원간 소통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브랜드 가치를 고도화했다.
◇왜 고무장갑은 빨간색이어야 할까?…‘오이스터 프로젝트’
현대카드는 자동차 외에 이마트와도 손잡고 혁신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오이스터(OYSTER) 프로젝트’는 단순한 생필품으로 인식되던 주방용품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현대카드는 주방을 단순한 가사 노동의 공간이 아닌 음식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핵심 공간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이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새로운 감성의 주방용품은 ‘오이스터(OYSTER, 굴)’로 명명됐다. 오이스터는 성장하면서 성을 바꾸는 생물로, 단순 생필품으로 여겨지는 주방용품을 갖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기호품으로 바꾸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또한 주방용품을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상품으로 인식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의미도 담았다.
현대카드는 사람의 인식 속에 상투적으로 자리 잡은 ‘주방용 고무장갑은 붉은색’을 탈피하고 어떤 주방에도 어울리는 오렌지와 네이비, 베이지 컬러로 구성된 고무장갑과 남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의 앞치마와 행주, 오븐글로브 등을 새롭게 제안했다.
2013년 2월, 전국 60여개 이마트 매장에서 1차로 출시된 오이스터 상품군은 고무장갑과 수세미, 행주, 앞치마 등 6종으로 출시 초기부터 첫 제작 물량이 매진되는 등 소비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같은 해 4월 조리도구와 믹싱볼, 그릇, 도마, 커틀러리 세트로 구성된 2차 제품을 출시했다.
총 11종의 오이스터 제품은 전국 60여곳 이마트에서 살 수 있으며 현대카드 M포인트를 보유한 고객은 100% M포인트로 모든 오이스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현대카드 오이스터 프로젝트는 기존에 디자인을 주제로 국내 디자이너와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을 직접 도왔던 것과 달리 현대카드만의 차별화된 디자인 역량으로 기존 제품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디자인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원도 봉평장, 전통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다.
2014년 4월 27일, 강원도 봉평장이 시끌시끌했다. 시장 한가운데 차량부스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 상인의 얼굴이 새겨진 스탬프를 종이봉투에 찍으며 신기해하고 새 단장한 쉼터에는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이 시장에서 산 먹을거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시장 골목골목에는 물건을 사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현대카드가 강원도와 함께 2013년 3월부터 1년간 준비해온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반영해 새로워진 봉평장이 본격 운영되는 날이었다.
정부에서는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전통시장 1km 이내에는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고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는 대형마트 강제휴무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도심 전통시장으로 방문객의 발길을 돌리는 데에는 유효할 수 있겠지만, 강원도 전통시장에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도 등 도시민들의 방문을 유도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라고 하면 대형마트를 염두에 두고 최신식 건물을 증축하거나 시장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통신 등 기반시설을 설비하는 ‘시설 현대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카드 디자인 랩은 통상적인 ‘현대화 시설 만들기’가 아닌 전통시장 고유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은 강원도 봉평장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소설 속 장돌뱅이 허생원이 찾았던 봉평장은 4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전통시장으로 문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현대카드는 전통시장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여전한 생명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이곳, 작은 변화를 더해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는 봉평장을 우선 대상으로 선정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봉평장에는 이곳을 오래도록 지켜온 많은 상인이 있다. 대를 이어 터줏대감으로 뿌리내린 상회, 60년째 문을 연 이불가게 등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를 간직한 주인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봉평장 상인들의 푸근하고 살가운 정서와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가게마다 지닌 특색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상인과 방문객을 더욱 가깝게 연결할 수 있도록 가게마다 상인의 얼굴사진을 넣은 미니간판을 달고 명함을 제작했다. 판매물품을 들고 있는 상인의 얼굴을 내건 만큼 방문객에게 신뢰도를 높이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현대카드는 ‘봉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밀’에 주목했다. 메밀은 강원도 산골의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적응력이 뛰어난 작물이다. 봉평장에는 특산물인 메밀을 활용한 베개, 차 등의 상품이 있지만 아이를 포함한 가족단위 방문객을 유인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현대카드는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밀볶음면, 메밀호떡, 메밀피자부꾸미, 메밀피자 조리법을 개발해 상인들에게 전수했다. 메밀 씨앗을 담은 메밀놀이주머니도 새롭게 만들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이 되게 했다. 메밀놀이주머니는 봉평 주민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도록 해 수익을 얻게 한 것도 특징이다.
현대카드는 전통시장 정체성을 정립하고 시장상황과 지역사회에 맞게 조화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를 봉평장 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북을 만들고 상인을 위한 품목별 VMD(Visual Merchandizing) 가이드북도 제작했다. 강원도는 향후 봉평장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본보기로 삼아 도내 전통시장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이제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상품을 의무 구매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내가 원해서 구매하는 시대, 즉 구매 팔로어가 생긴 것입니다. 이 같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제품 본연의 가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현대카드 디자인팀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안성민 현대카드 디자인 랩 팀장은 기아차와 콜라보로 탄생한 마이택시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 이를 통해 모든 소비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혁신적이고 본연의 브랜딩’ 작업을 디자인으로 정의했다.
안 팀장은 “택시의 본질은 승객을 안전하게 A지역에서 B지역까지 이동시키는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택시를 안전한 완제품으로는 인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의 하나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택시에 담긴 본질, 철학을 바꾸기 위해 기아자동차와 손잡고 새로운 개념의 택시를 개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유통과 자동차, 전통시장 등 금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야지만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안 팀장은 “현대카드 브랜딩 작업은 다양한 문화와 철학을 담고 있다”며 “단순히 홍보나 치장을 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디자인이 아닌 핵심적인 본질을 추구하는 쿨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카드와 콜라보를 했던 많은 이종 기업의 만족도는 상당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