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12> 동부하이텍, 험난했던 반도체 파운드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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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코실 실리콘공장 준공 당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1986년 코실 실리콘공장 준공 당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동부그룹도 반도체 산업과 인연이 깊다.

동부는 1983년 미국 몬산토와 합작으로 코실(현 LG실트론)을 설립, 국내 최초로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했다.

1990년 코실의 경영권을 LG(당시 럭키소재)로 넘겼지만 2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며 반도체와 연을 이어나갔다. 1997년 초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설립하며 다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부전자는 미국 IBM과 제휴, 256M D램을 생산하려 했다. 그러나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충북 음성에 신축하고 있던 반도체 공장 건설은 중단되고 말았다.

동부가 사업 방향을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으로 바꾼 것도 이즈음이다. 회사는 일본 도시바로부터 130, 150나노 공정 기술을 이전받아 2001년 4월부터 파운드리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역시 난항을 겪었다. 본격 생산에 접어든 지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아 2001년 9월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시기에 세계 반도체 산업은 최악의 불황기를 겪었다.

1990년대 후반 충북 음성 동부하이텍 공장 건설 장면
<1990년대 후반 충북 음성 동부하이텍 공장 건설 장면>

동부는 승부수를 걸었다. 200㎜ 웨이퍼 투입 기준 생산량을 월 5000장에서 2만장으로 증설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을 포함한 11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 5100억원을 조달했다. 그해 동부전자 매출은 제로였다. 김준기 동부 회장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아남(현 앰코테크놀로지)은 재무 구조 개선과 반도체 패키징 분야 집중을 위해 파운드리 생산 공장(부천 소재)을 동부에 매각했다.

현재 동부하이텍 부천공장 전경
<현재 동부하이텍 부천공장 전경>

2002년 7월 동부는 아남반도체 경영권을 인수한다. 이후 음성 공장에선 130나노급 기술을 기반으로 CIS와 디지털아날로그 혼성신호 제품, 부천 공장에서 180나노급 기술을 기반으로 한 BCD(Bipolar·CMOS·DMOS) 및 임베디드 플래시 등 제품을 각각 집중 생산하면서 경쟁력을 쌓아 나갔다.

2006년에는 사명을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바꿨다. 이듬해 동부한농과의 합병 이후 또다시 사명을 동부하이텍으로 변경했다. 기술 경쟁력 높이기는 계속됐다. 2010년 동부하이텍은 마침내 아날로그반도체 특화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부하이텍 생산 엔지니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부하이텍 생산 엔지니어>

그러나 회사 재정 상황은 악화 일로였다. 동부하이텍은 1997년 설립 이래 2014년까지 단 한 번도 연간 순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동안 동부하이텍에 쏟아부은 돈만 2조원이 넘었다. 김 회장은 2009년 9월 동부하이텍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첫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도 사상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뒷받침되고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쌓은 것이 이익으로 되돌아왔다. 김 회장의 뚝심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국내 팹리스 업체의 한 대표는 “동부하이텍 같은 순수 파운드리 업체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토종 팹리스가 비빌 수 있는 토양 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음성과 부천의 동부하이텍 공장 로비에는 김 회장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다.

“우리는 비메모리 사업에 헌신해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다.”

동부그룹이 긴 세월 동안 적자에 허덕였음에도 동부하이텍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