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잉여는 창조를 낳는다

정상원 넥슨 부사장
정상원 넥슨 부사장

잉여는 창조를 낳는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게임만 보더라도 1980년대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이 만개한 이후 가정에서 게임을 즐기는 '콘솔 게임' 시대가 도래했다.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는 '온라인게임'이 태동하고, 이후 발전을 거듭했다.

온라인게임 초기의 한국 게임 생태계는 좋은 씨앗을 뿌리면 아름드리나무로 쑥쑥 자라는 비옥한 토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작이 일부 흥행 장르에 편중됐다. 혁신을 찾지 못해 성장 정체가 왔다. 그때 '모바일'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적은 자본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1인 개발자들이 성공했다. 활기를 잃어 가던 한국 게임 업계에 희망이 싹텄다.

모바일 게임은 손바닥 위 PC로, 게임기로 자리매김했다. 게임을 접하지 않던 연령층도 다양하게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며 시장을 넓혔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도 경쟁이 심해지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스마트폰은 게임 입력이 쉽지 않다. 오래 할 수 없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게임이 점점 단순해졌다. 이용자들은 시간 때우기 용으로 모바일 게임을 소비했다.

복잡한 생각 없이 쭉 따라오게 만드는 익숙한 반복 패턴의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누렸다. 게임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평점이나 게임 리뷰가 아니라 TV에 나오는 광고나 이미 유명해진 이름, 마켓 추천이 됐다.

출시 게임 수가 기하급수로 늘자 게임사는 무엇보다 이용자 손 위에 게임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마케팅 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대다수 게임이 개발비 이상을 마케팅비에 쏟아 넣었다. 이미 마켓 수수료가 매출 30%인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까지 추가된다. 크게 성공한 게임 개발사 외 대다수 개발사들은 차기작을 기대하는 잉여를 확보하지 못했다.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 악순환은 생태계를 황폐화시켰다.

인류 문화가 발전한 원인의 하나는 농경 생활을 하면서 쌓은 생산물이다. 먹거리에 여유가 생기자 지식의 유희를 즐기기 시작했다. 잉여는 창조의 기반이다.

과거 온라인 게임이 호황기를 유지한 건 게임이 성공하면 그 수익을 기반으로 여러 개의 새로운 게임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장을 통해 한 차원 높은 회사로 성장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실패하면서 노하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도전했다.

지금 모바일 게임의 수익 구조는 다소 작은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양극화다. 이 과정에서 개발되는 게임들은 팍팍한 개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싫어도 앞선 성공 방정식을 따른다. 비슷한 게임이 범람하자 지식재산권(IP) 확보와 마케팅으로 극복하려 한다. 해야 할 일이지만 여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

게임 업계는 당장 눈앞보다 길게 보면서 제작 환경에 더 투자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극소수에게 자본과 기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겨내야 한다. 잉여가 충분한 대형 기업이 앞에 나서야 한다.

영화계에서도 블록버스터 영화는 높은 비율로 스크린을 점유한다. 그 와중에도 작품성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실험 작품이 영화 산업 전체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다. 게임 업계가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용기를 가져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정상원 넥슨 개발총괄 부사장 dev@nex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