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스타트업, '통계'에 주목하라

남상협 버즈니 대표
남상협 버즈니 대표

지난 2007년에 설립된 버즈니는 초창기의 배고픔을 열정 하나로 버텨야 했다. 비품 구입비를 비롯해 회사 운영에 필요한 모든 운영비를 절감했다. A4 용지를 구매할 비용조차 아낄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모니터 하나에 둘러앉아서 회의한 날도 부지기수다.

그동안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른바 '데스밸리'라고 불리는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버즈니는 2010년에 지독한 데스밸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당시 자체 개발한 모바일 영화 추천 애플리케이션(앱) '버즈니 영화 가이드'가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은 쉽지 않았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던 회사에 부하가 걸렸다. 적은 인력으로도 원활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특정 서비스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지속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묘안을 강구해야 했다.

한 임원은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각 서비스의 주요 지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의사 결정에 활용하자고 설명했다. 개발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꼭 통계가 필요한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당시 구축한 통계 시스템은 현재 버즈니 임직원이 매일 사용하는 '하스(HAS, Hsmoa Analytics System)'의 시초가 됐다. 하스는 버즈니의 모바일 홈쇼핑 포털 앱 '홈쇼핑모아'의 서비스 주요 지표를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눠 시간, 일, 주, 월 단위로 실시간 제공한다.

서비스 운영·기획 담당 부서는 이 같은 이용자 행동 수치 변화 통계를 기반으로 위기 대응 및 계획 수립 업무에 활용한다. 마케팅 부서는 방문자나 앱 다운로드 지표를 사용,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도출한다. 서버 관련 개발 부서는 신속하게 장애를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 관련 수치를 실시간 확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스는 개발 단계부터 모든 직원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비스는 모든 부분을 긴밀하게 연결해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급이나 부서와 관계없이 정확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차별화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다. 부서 간 의사 결정이나 조율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각 부서가 하스에 필요한 항목을 자발 추가, 업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스 도입 이후 가장 눈에 띄는 긍정 변화는 각 부서가 업무를 자율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상시 하스에서 수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도 하스에서 회사 전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의사 결정 때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객관 데이터를 제공한다.

현재 버즈니에서는 직원들이 회의 자료를 A4 용지에 출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스가 만들어 낸 버즈니만의 독특한 사내 문화다. 운영비 절감을 위해 A4 용지 구매를 망설여 하던 수년 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하스는 이제 버즈니 경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는 소수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효율 높게 처리해야 하는 스타트업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통계 시스템을 발판 삼아 어둡고 깊은 데스밸리를 넘어 비상하기를 기대한다.

남상협 버즈니 대표 namsangbo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