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인터넷 세상]<4> '게임은 악', 잘못된 전제로 국내 산업에 굴레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 제한은 법이 정한 규제가 아니다. 사업자가 결제 한도를 지키지 않으면 게임물 이용 등급을 매기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을 내주지 않는 식으로 운영된다. 민간 심의 시대에도 이 같은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게임업계는 PC방을 중심으로 유통하는 기프트카드 등으로 월 결제 한도를 우회하기도 한다. 이런 편법을 찾는다 해도 규모를 크게 늘리기 어렵다.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는 △성인 자율권 침해 △글로벌 플랫폼과 형평성 부족 △플랫폼 통합 시대 실효성 부족 등의 지적을 받는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이 같은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게임업계는 올 상반기 협의체 회의를 통해 성인 게임에 한해 결제 한도를 업계 자율로 정하는 안을 내놨지만 곧 반대에 부닥쳤다. 올 상반기에 게임위원회 위원 가운데 대다수가 교체되면서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회 일부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성인 게임 결제 한도를 업계 자율로 맡기면 확률형 아이템 범람 등 부작용이 심각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업계와 정부가 개선에 동의했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는 문제에 봉착했다.

온라인 게임의 결제 한도 규제는 '건전성'이라는 명분을 방패로 실효성 없는 제도를 붙잡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성인 게임에만 자율권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압박이 지나친 것으로 지적된다.

개선 논의가 진전이 없는 사이 글로벌 업체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규제 없는 플랫폼으로 말미암아 게임업계의 영향력은 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구글플레이 거래액(매출)은 1조원에 근접했다. 2분기에도 월 최고 거래액 규모를 경신했다. '리니지2레볼루션'과 '리니지M' 흥행이 매출 성장에 힘을 보탰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 규제는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게임을 유해 매체로 보고 이용자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결제 한도 규제는 게임 셧다운제와 마찬가지로 '게임은 악'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규제”라면서 “결제 한도와 관련해 자율 규제를 적용하고, 자율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는 지원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게임은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하는 대표 비즈니스 영역”이라면서 “현행 온라인 결제 한도는 자연스러운 네트워크 효과를 막아 성장을 제한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