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비트코인과 앵그리 2040

정부가 비트코인 거래를 사전에 규제한다면서 정책 방향을 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 해킹당한 한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가 파산했다.

그로 인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정부는 '나 몰라라'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애초에 하지 말라고 했으니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비트코인에 쏠린 사람들 관심에 비춰 볼 때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A회사가 지난해 11월 초에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 인지도는 31%, 보유(경험)자는 4.7%였다. B회사의 12월 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지도는 35.1%로 나타났다.

정부 규제가 지지를 받고 나아가 집행력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 현상을 과학 체계로 수량화하고 분류해야 한다.

그리고 관찰된 사건들 사이에서 상관성과 인과성을 찾아야 한다. 그 후 비트코인 거래의 부작용과 역기능에 대처하기 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이 시장 조사를 위해 편의로 실시하는 마케팅 여론조사 수준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규제책만 내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해외 상황은 어떤가. 캐나다은행은 최근 비트코인 거래 활동을 객관화시킨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체계화한 샘플링을 통해 캐나다인 1997명을 2단계로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캐나다 인구의 약 64%가 비트코인을 들어 봤지만 단지 2.9%만 소유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보유자는 조사 대상자 가운데 58명에 불과했다. 재미있는 것은 실업자들 사이에서 비트코인 인지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근로자 인지도는 51%였으나 실업자는 73%가 알고 있었다. 근로자들 가운데에는 은퇴자의 63%가 비트코인을 알고 있었다. 비트코인 소유 여부를 보면 젊고 고학력일수록 많이 갖고 있었다. 즉 지식수준과 비트코인의 채택은 양의 상관성이 있었다.

박한우 교수
박한우 교수

미국은 유력 언론사 CNBC가 소셜 빅데이터를 이용해 측정했다. 트위터 데이터를 수집해 비트코인과 여러 알트코인의 전국 현황, 사람들 내면의 감정과 동기를 조사했다.

지난해 1~11월 미국 내에서 이더리움과 라이트코인에 쏠린 관심은 1000% 이상 증가했다. 비트코인 언급도는 단지 300% 증가한 반면에 리플 언급도는 1800% 이상 치솟았다.

흥미로운 결과는 암호화폐 관심이 미국 중부 지역에서 많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미국 중부는 금융과 기술 허브와 꽤 떨어진 지역이다. 특히 1~11월 텍사스와 오하이오주의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관련 총 언급도는 각각 670% 및 890% 올랐다. 시카고 선물거래소가 위치한 일리노이주 지역의 관심도는 1048%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동향을 보면 가상화폐 정책 마련을 위한 현황 조사가 선행돼야 함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인지도와 보유 현황을 성별, 연령별, 계층별로 검토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가상화폐 거래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찾아내고, 인구의 사회 속성에 따른 구매 계기 차이 비교가 필요하다. 당장 포털에 개설된 관련 카페에 들어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게시된 글들을 읽어 보면 구매 계기와 목적이 '돈벌이'로 분류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기를 그저 사행심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20대 대학생, 30대 독신녀와 경력 단절 주부, 40대 직장인 집단이 높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가상화폐를 시작한 이유는 뭘까. 그저 수익성만 무작정 좇는 이른바 '한탕주의'일까? 비트코인에 몰리는 2040세대 집단의 마음에는 부모 세대와 비교되는 '보상 심리'가 내재돼 있다. 청년들만 취업을 우려하는 것이다. 2040세대는 누구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성 세대가 누린 '부동산 대박'도 없다.

이번 정부는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2040세대의 촛불집회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바로 그들이 비트코인을 거래하고 투자하다가 피해를 봤다. 그리고 지금도 앵그리 2040세대가 투자 목적뿐만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과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해 거래소에 접속하고 있다. 거래소는 하루에도 억대의 수수료를 챙기지만 이용자 보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더욱이 사람들은 이른바 CCM으로 불리는 가상화폐 채굴과 관리회사의 악성 마케팅에도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암호화폐 보급과 인식률부터 시작하여해 사회 역기능과 부작용에 대한 과학 측정 및 분석을 서둘러야 한다.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 소장) hanpark@y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