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유전자 치료제 경쟁, 한국만 제자리걸음

줄기세포 기업 연구진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줄기세포 기업 연구진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전통적인 바이오 선진국을 넘어 최근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까지 공격적인 규제 개선으로 세포와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낸다. 우리나라는 '인보사' 사태 이후 관련 법안 계류, 시장 침체 등 세계 추세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높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보건부는 우수병원에 한해 규제당국 승인을 받지 않은 세포 치료제 판매와 투약이 가능한 정책 초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 내 전문의료와 연구에 특화된 1400여개 '우수병원'에 한해 세포를 처리하고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데 전문지식이 있음을 입증한 뒤 판매 면허를 신청한다. 면허를 획득하면 병원은 검토위원회를 설치해 참가자와 '실험적 치료' 임상연구를 감독하고, 위원회가 치료법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 병원에서 판매하도록 한다. 이르면 3분기 안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는 기존 신속허가제, 조건부허가제 등과 유사하다. 아직 허가를 받지 않은 치료제 중 희귀·난치성 질환을 대상으로 임상3상 시험을 전제로 환자에게 우선 투약하는 제도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병원에서 심사, 판매까지 이뤄지게 해 신속성을 높였다.

국내 세포 치료제 기업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신속한 환자 적용과 상업화 측면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정책”이라면서 “물론 환자 안전 우려 목소리가 있지만, 우리나라 상황을 놓고 볼 때 중국 정부 산업 육성 의지와 추진력은 부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는 손상된 세포나 조직, 유전자를 재생하거나 바꿔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다. 차세대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으로 주가를 높이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선점 경쟁도 뜨겁다.

미국은 2016년부터 첨단재생치료제 신속 인·허가 제도를 시행한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유전자치료제도 다른 의약품과 같은 수준으로 규제할 계획이라고 규제 완화 조치를 예고했다. 유럽은 지난해 12월부터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조직공학치료제 등을 대상으로 첨단의료제품 별도 규정을 시행, 육성에 공을 들인다. 일본 역시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안전성이 입증된 상태에서 약효 가능성만 추정되면 조건부 시판을 허가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규제를 개선했지만 갈 길이 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의약품 개발지원 및 허가특례에 관한 법률' 제정과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운영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임상시험 허가, 판매 승인, 보험 수가 적용 등 까다로운 규정이 산적한다.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케이주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케이주

최근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사태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법률안'을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 비교적 간단한 세포배양은 병원 허가, 복잡한 유전자 변형 등은 식약처 허가로 이원화돼 R&D가 간결해 진다. 특히 세포 배양, 관리 등 규정이 강화돼 인보사 사태 재발 방지도 도움이 된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업 관계자는 “첨단 바이오법은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바이오 의약품 개발 공정을 강화하는 취지도 있지만, 인보사 사태 이후 관련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면서 “세계 각국은 세포,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선언적 육성의지만 남발한 채 꼭 필요한 사안은 사회적 합의, 안전성 검증 등을 이유로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