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기연은 기술 하나만을 믿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액정디스플레이(LCD) 장비 개발에 뛰어든 말 그대로 모험기업이다.
신도기연이 LCD 장비분야에 뛰어든 것은 지난 89년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에 연구실을 겸한 조그마한 공장을 마련하면서부터다. 박웅기 사장(43)은 액정디스플레이산업의 선구자였던 (주)한독에서 LCD 공정기술담당자로 일하면서 경험을 살려 외국산 일색이던 제조장비를 국산화하고 싶은 열정 하나로 신도기연을 설립했다.
당시 주위사람들은 박 사장의 이같은 행동을 적극 만류했다. 성공 가능성 있는 모험이기보다는 실패가 예정된 무모한 행동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당시 보따리 살림을 차린 박 사장의 행동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로만 치부했다. 장비는 당연히 일제를 써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던 때이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지원제도가 전무했던 시절이라 박 사장은 자금지원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개인 재산을 처분해 공장을 마련하고 그날부터 장비개발에만 몰두했다. 박 사장은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당시 방영됐던 인기외화 시리즈 「왼손의 맥가이버」를 딴 「LCD장비의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TN LCD가 주종이었고 STN LCD가 도입되기 시작한 지난 90년 신도기연은 박 사장의 땀방울로 국내 최초로 익스포저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익스포저란 ITO코팅된 유리기판에 액정을 구동하기 위한 회로를 형성시켜주는 노광기로 대당 2억원이 넘는 고가 장비였기 때문에 이의 국산화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익스포저는 현상액을 유리기판에 도포한 후 포토마스크를 통해 빛을 쪼여 원하는 회로의 본을 뜨는 것으로 현재 반도체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디스플레이(TFT LCD) 제조에서는 핵심장비다. 수동구동방식인 TN 및 STN LCD에서는 정밀도가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핵심장비인 노광기의 국산화는 LCD장비도 국산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박 사장은 그러나 이 노광기와 연결된 식각장비는 국산이 없어 수입제품으로 공정을 꾸밀 수밖에 없었다.
2대의 익스포저를 납품하는데 성공한 신도기연은 곧바로 어셈블러 제작에 뛰어들어 이듬해 어셈블러 2대를 생산라인에 적용하는 개가를 올렸다. 어셈블러는 수십 미크론 크기의 수많은 셀이 형성돼 있는 2장의 유리기판을 액정을 담을 수 있도록 한치의 오차없이 상하로 접합시켜주는 장비로 역시 대당 1억원을 호가한다.
신도기연은 어셈블러와 함께 다음 공정에 쓰이는 접합된 2장의 유리기판을 떨어지지 않게 고착시켜주는 핫프레스도 곧바로 국산화, 4대를 공급하며 이 때부터 해마다 새로운 장비개발은 물론 이미 개발한 장비의 업그레이드에 박차를 가한다.
신도기연은 이후로도 셀갭을 형성시켜주는 스페이스 도포장비, 셀갭에 접합에 필요한 열경화성 수지를 바르는데 쓰이는 스크린프린터, 액정주입기, 액정을 주입한 후 입구를 밀봉하는 엔드실 머신 등을 차례로 국산화, 국내에서 알아주는 LCD 장비업체로 부상했다.
박 사장이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하나의 장비를 개발하는 것도 어려운데 LCD 제조공정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끝없이 개발해내는 신통한 재주 때문이었다.
신도기연이 많은 장비들을 끊임없이 개발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기술 그 자체보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박 사장의 용병술. 박 사장과 8명의 조립부 직원이 전부인 신도기연에는 박 사장을 제외하고는 공고나 이공대 출신이 단 한명도 없다. 창의적인 발상과 부분품의 조립이 전부인 장비산업의 특성을 감안, 창의성을 더욱 중시하는 박 사장의 인력 채용기준 때문이다.
박 사장과 8명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건 공장에서건 틈만 나면 회의와 토론을, 때로는 격론을 벌인다. 어떠한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고 장비의 성능개선에 반영하려는 박 사장의 끈질긴 집념을 체득한 직원들이 서슴없이, 때로는 엉뚱한 아이디어까지도 즉석에서 제기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술이나 방법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무래도 창의력이 떨어진다는게 박 사장의 지론이며 따라서 아예 기존 기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박 사장의 이같은 생각 때문에 신도기연의 식구들은 모두가 연구자들이요 아이디어 뱅크요 직접 장비조립까지 맡는 1인3역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외견상으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 사장은 아직도 고통스럽다. 사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채산성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박 사장이 각종 장비들을 섭렵해가며 국산화를 해가는 것도 한가지 장비만으로는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국내 TN, STN LCD산업이 점차 사양화하는 바람에 설비투자가 거의 없고 따라서 신규수요가 창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기연은 하는 수 없이 대체수요를 파고 들었지만 시장이 충분치 않아 닥치는 대로 장비를 국산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연구개발비는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나 자금압박에 시달렸으며 그토록 많은 장비를 국산화했으면서도 아직도 남은 것은 기술력밖에 없는 형편이다.
신도기연은 그러나 지난 94년 부천으로 확대 이전하면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내 TFT LCD산업이 급성장을 거듭, 관련장비 시장이 황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TFT LCD는 박막형성이 주가 되는 전공정분야는 TN, STN LCD와 큰 차이가 있지만 패널을 만드는 후공정분야는 TN, STN보다 오히려 쉽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략이 가능하리라고 박 사장은 판단했다.
신도기연은 이후 TFT LCD장비시장 공략을 위해 액정주입기와 융착경화장비, 엔드실머신 등 후공정장비 3종을 전략품목으로 선정하고 기능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신도기연은 특히 액정주입기 제조와 방법에 관한 특허와 핫프레스에 관한 특허를 등록했으며 엔드실머신과 관련된 특허를 출원중으로 그동한 쌓아온 노하우를 지적재산권으로 확보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신도기연은 기계적인 방법으로 가압하던 기존의 핫프레스 방식을 유압으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내는 성과를 올렸다.
신도기연은 대규모 설비가 요구되는 TFT LCD 장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대대적인 체제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 벤처기업 육성 붐 덕으로 창업투자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신도기연은 더욱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판매조직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개발한 TN, STN LCD 장비를 설비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장에 판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TFT LCD 장비분야에서는 사업 초기처럼 여전히 외산장비에 대한 두터운 선호 벽 때문에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장비 성능에서는 결코 외산에 뒤지지 않는다고 박 사장은 자신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TFT LCD 장비도 일단 물꼬만 터진다면 국산대체가 결코 어렵지 않으며 특히 주력제품인 액정주입기와 핫프레스, 엔드실머신에서 만큼은 1백% 장비 국산화가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
[인터뷰] 박웅기 신도기연 사장
『TFT LCD 후공정장비는 창의성과 기술력만 갖추고 있다면 중소기업이 얼마든지 노려볼 만한 분야입니다.』
반평생을 LCD분야만 곧게 파고들고 있는 신도기연의 박웅기 사장(43)은 TFT LCD의 후공정장비 국산화야말로 순발력있는 벤처기업들이 주역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LCD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장비 국산화가 시급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디스프레이조합 LCD 장비부품수급협의회 장비분과위원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박 사장은 장비업체들이 많이 생겨나면 상호 정보를 교류할 수 있고 또 개발한 장비를 시스템화해 장비의 성능검증이나 개선에 훨씬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사장은 『그러나 장비를 개발하는 것과 국산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장비개발은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할 일이지만 국산화하는 것은 모든 관련기관과 단체, 기업들이 보조를 같이해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장비를 개발한 업체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발된 장비를 판매하기 위해 검증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국산화한 장비의 성능이나 품질을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산장비 채용이 일종의 모험으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래서는 아무리 훌륭한 장비를 개발해도 국산화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장비성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장비국산화는 모두 개발업체들의 홀로서기에만 의존해왔습니다. 브라운관 장비도 그렇고 반도체장비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장비 국산화가 더뎠고 장비산업의 발전속도가 해당업종의 산업 발전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지요. 그러나 LCD에서만큼은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능력을 갖춘 장비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국산화를 보다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TFT LCD분야에서는 민관이 다 국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장비 국산화는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박 사장은 믿고 있다.
액정주입기, 핫프레스, 엔드실머신 등 3종을 이미 국산화한 신도기연은 앞으로 PDP장비의 국산화도 계획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LCD장비나 PDP장비를 제작해 공급하고 있듯이 모든 장비는 같은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으면 품목다각화가 쉬운 것이 장비사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박 사장은 『장비업체는 최고의 품질을 지닌, 새로운 개념의 혁신적인 장비를 만들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의 장비를 사용하는 업체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최고의 성공비결』이라며 신도기연을 그렇게 키우고 싶다고 피력한다.
<유성호 기자>
신도기연의 아홉식구들은 모두가 연구자이자 창의력으로 가득찬 싱크탱크요 장비를 직접 만드는 기술자라는 1인3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