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북서지역에 있는 「미치노 리녹(시장)」에서는 러시아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전자제품이 거래된다. 신제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낡은 기계의 부품을 들고 나와 좌판을 차린 나이 든 노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어 수리용 부품도 싼 값에 구할 수 있다. 모스트바 시내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 시장의 주요 고객은 청장년층 남자들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발디딜 틈 없이 만원을 이룬다.
이 시장은 원래 필요한 전자부품들을 서로 교환하는 시장으로 출발했다. 운이 좋으면 우주선과 통신할 수 있는 기기를 발견하거나 최신의 메모리 칩을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컴퓨터의 확산에 따라 이 리녹의 주요 상품도 바뀌었다. 미치노 리녹은 이제 해적판 디스켓 판매시장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 시장에서 정품 소프트웨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판매되는 소프트웨어들은 전부 불법 복제한 것들이다. 윈도95가 상품으로 출시되기 전에 그 시험용 프로그램 복제판을 미치노 리녹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비디오, 오디오 관련 제품들도 주요 상품에 속한다. 이 시장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가격. 일반 디스켓은 1장당 1달러 정도에 거래되며 CD타이틀은 정품가격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있다.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이 불법 복제품들에 대해 손을 쓸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비롯한 국내외 소프트웨어업체들의 항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사범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연초에 불법 디스켓 복제와 관련된 12건의 형사 사건이 처리됐다. 최근에는 모스크바 북서지역 내무부서의 경제범죄담당분과 소속팀들이 일상적인 컴퓨터 해적사범들의 저작권 침해사례를 폭로하고 미치노 리녹에서 컴퓨터 게임을 불법 복제한 CD타이틀을 판매한 2명의 젊은이를 체포했다. 이들은 MS사의 프로그램을 똑같이 복사해 패키지당 1백50달러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MS사는 2명의 복제사범 때문에 최소한 5만7천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미치노 리녹이 위치한 모스크바 북서지역 내무부서에는 얼마전에 해적복사물들과의 싸움을 담당할 특별전담반이 구성됐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해적 복사는 미치노 리녹만이 아니라 모스크바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판매가 지나칠 만큼 분리돼 있는 판매구조하에서 컴퓨터 이용자들은 일일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해야 한다. 도스만 달랑 설치된 컴퓨터를 채워야 하는 이용자들에게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가격이 싼 만큼 차후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다. 미치노 리녹을 비롯해 러시아 불법 복제품 시장에 흘러드는 상품들은 대체로 범죄조직들의 주도하에 제품의 기술적 요구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조잡하게 만들어지거나 중국, 폴란드 또는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들어오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컴퓨터 바이러스는 이 디스켓들에 동반되는 「공짜 부록」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이 가짜 디스켓들은 종종 컴퓨터 세트 전체구조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치노 리녹은 간간이 실시되는 정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건재한다. 음성적으로 불법 복제 디스켓들과 CD타이틀들이 계속 제작돼 팔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치노 리녹에서 의심스러운 제품은 구입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경찰들도 지속적인 단속을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불법 복제품들이 단시일 내에 사라질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상인을 몇 명 체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윤이 남는 장사를 절대 포기할 리 없는 범죄조직들에 의해 유통구조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점,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램들조차 고가로 구입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유통구조의 문제점, 저작권 개념이 명확히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 복제를 죄악시하지 않는 러시아인들의 의식 등이 개선되지 않는 한 미치노 리녹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스크바=강혜련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