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68)

『현미씨 가자.』

『정말 괜찮아?』

『괜찮아.』

『여기 근무하는 것 알고 있잖아?』

『알고 있어. 하지만 이 난리에 이곳까지 올 수 있겠니?』

『그래도 그렇지, 만일 오게 되면 어떻게 하니?』

『가자.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어.』

혜경이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은행 문을 나섰다.

현미도 은행을 지키는 박 대리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는 혜경의 뒤를 따라나섰다.

쪽문. 두고 늘 쪽문으로만 다녀야 했다. 은행문을 열기 전에 출근해서, 은행문이 닫힌 후 퇴근하다 보니 늘 쪽문이었다. 정문은 이미 맨홀에서 화재가 난 직후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느티나무. 그래도 쪽문 쪽에는 그럴싸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그 아래엔 돌로 된 벤치가 몇 개 있었고.

거기서 현미와 혜경은 늘 헤어졌다.

혜경은 시청쪽, 현미는 종각쪽. 늘 그렇게 헤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

현미와 헤어진 혜경은 은행 건물을 돌아 다시 프레스센터가 보이는 큰 도로로 나섰다. 도로에는 통신케이블 드럼이 줄지어 놓여 있고, 한참 전까지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나던 맨홀마다 양수기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청앞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로 맨홀마다 양수기로 물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덕수궁. 혜경은 덕수궁 정문을 지나 돌담길을 걸어 올라갔다. 늦은 가을, 날씨는 제법 싸늘했지만 돌담길을 따라 드리워진 가로등이 담장을 가득 메운 담쟁이덩굴과 어우러져 운치가 있었다.

혜경은 돌담길이 끝나고, 방금전 퇴근한 은행 뒤쪽 느티나무가 보이는 골목에서 방향을 꺾었다. 여전히 은행쪽 느티나무가 가까이 보이고 있었다. 창연오피스텔. 혜경은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일동은행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는 창연오피스텔이 혜경의 숙소라는 것을 아는 은행 직원들은 없었다. 퇴근할 때마다, 그 어느 때라도 혜경은 언제나 시청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오프라인. 혜경은 그 길은 오프라인이라고 생각했다.

은행 동료들 아무도 혜경이 창연오피스텔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꽤 오래된 건물. 입구는 물론 1층 로비에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혜경은 엘리베이터의 상승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