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닥 폭락과 테헤란밸리 닷컴기업들의 잇따른 도산으로 벤처시장이 얼어붙자 기술력있고 마케팅능력을 갖춘 실적있는 업체만 살아남는 차별화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대덕밸리도 서울서 불기 시작한 벤처시장의 싸늘한 찬바람 탓에 한때 긴장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으나 대덕밸리 벤처들의 왕성한 연구개발과 기술력, 성장성, 다양한 수익모델로 이를 극복하고 있으며 오히려 국내외시장으로 뻗어나갈 좋은 기회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웬만한 학벌가지고는 명함 내밀기도 힘든 「박사동네」 대덕밸리에서 비연구원 출신 벤처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유니온테크(http://www.uniontech.co.kr)의 엄정렬 사장(57)과 에이치피에스(http://www.hps.co.kr) 조세현 사장(32). 이들은 대덕밸리에서 흔하디 흔한 박사학위조차 갖지 못했지만 당당히 벤처를 일군 대덕밸리 벤처 1세대들이다. 나이많은 엄 사장이 3년 앞서 창업한 벤처선배고 조 사장은 지난해 창업으로 일정한 궤도에 오른 신세대 주자다.
조 사장이 이날 만남의 장소인 엄 사장의 사무실 유니온테크로 이동하기 위해 손수 몰고온 차는 둘이 타기에도 비좁은 소형 승용차. 또 오른손에는 언제든지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을 들고 있어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고 있는 벤처의 전형을 보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조 사장은 엄 사장을 만나러 함께 가며 『벤처답게 반바지 등을 입고 다니고 싶지만 비즈니스 대상층이 워낙 다양해 어느 한 곳에 맞추기가 어려워 아예 정장출근을 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넥타이를 산뜻한 파스톤 계열로 맨다든지 주말에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등 벤처인의 신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말해 개성이 강한 20대는 지났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장인 엄 사장 사무실. 서로 인사를 나눴지만 그래도 익숙지 않아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갖은 풍상을 다겪은 듯 노련한 엄 사장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치피에스가 무정전전원장치(UPS)를 개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도 PC 70여대가 들어와 있는데 갑작스런 정전 등으로 구축해 온 데이터가 날아갈 위험이 있어 절반만이라도 UPS를 설치해야 한다』고 조 사장에게 은근한 말투로 제품 구매의사를 나타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조 사장이 『오늘 만남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급가격을 최대한 다운시켜 보겠습니다』고 즉석에서 화답하자 한바탕 웃음바다가 이루어지며 이내 형님아우 사이처럼 친숙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두 사람은 요즘 벤처시장의 하락세와 대덕밸리에서 벤처의 기술동향, 생존을 위한 노력 등 벤처업계의 전반적인 주제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특히 연구개발 투자 지속, 경영의 어려움, 우수 연구원 확보 애로 등에 서로 공감을 표시하며 진솔한 가슴 속의 고민들이 실타래 풀리듯 쏟아져 나왔다.
엄 사장이 『대전에서는 우수연구인력 채용이 어려워 연구소를 서울로 옮길 생각』이라고 밝히자 조 사장은 『대덕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정작 마케팅과는 또다른 문제라며 마케팅이 고려된 기술력을 위해선 서울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이어 조 사장은 『대덕 연구원 출신의 부족한 점은 기술만으로 제품이 팔릴 것이라는 시각』이라며 『시장이 생각보다 혁신적이지 못하고 안정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나름대로의 소신을 폈다.
엄 사장은 『최근 테헤란밸리의 벤처집중을 처음부터 이상하게 봤다. 지금은 장소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전이야말로 벤처가 성장하는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산학연과 기업 대 기업 등의 기술협력을 통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을 이었다.
이내 두 사람은 자신의 기술력에 초점이 모아졌다. 엄 사장은 먼저 『국내 GIS소프트웨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몇년간 연구소·대학 등과 기술제휴를 통해 자체개발한 객체지향적인 GIS엔진과 이에 바탕을 둔 SW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기존 관계형 시스템과 달리 유니온테크 제품의 장점은 표현이 자유롭고 공간자료(도형자료)와 정보자료(텍스트자료)를 통합운영해 자료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다 엔진자체에 DBMS를 탑재해 별도 DBMS를 구축할 필요가 없다』고 자랑했다. 특히 지형·지물·지질·토목·환경 등의 공간정보를 관리하는 「국·공유지 관리시스템」을 비롯, 「지적민원전산관리시스템」 「문화재정보관리시스템」 「관광정보관리시스템」 「송신전파범위관리」 등의 기술을 개발하고 「대전시나 도청의 새주소관리시스템」 개발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엄 사장의 자랑에 뒤질세라 조 사장은 『최근 아일랜드 트레이딩사와 3년간 1차로 180만달러 어치의 UPS 수출계약을 맺는 등 꾸준히 수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NPS매니저프로그램을 독자기술로 개발, 단순히 전원을 공급하는 기존제품과는 달리 네트워크상에서 주변기기로 활용될 만큼 전원공급장치로서 제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이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벤처정책으로 화제를 옮겼다. 엄 사장은 『정부 발주과제가 원가 이하로 나와 벤처기업이 중기적인 발전의 밑그림을 그리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하자 조 사장도 공감을 표시하며 『정부 담당자가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 사장은 특히 후배 벤처창업자인 조 사장에게 정부입찰과 관련한 내용과 경험·노하우를 자세하게 설명해주며 주의까지 주는 등 맏형이 친동생을 대하듯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이에 조 사장은 서울 분위기를 전달하며 『며칠전 서울에 가서 벤처대표를 만났는데 테헤란밸리의 닷컴기업들은 생산설비가 없는 기업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생산설비를 갖춘 제조벤처만이 종국에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벤처기업들이 트렌드만을 좇는 투자는 곤란하다며 기업의 수익을 롱텀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최근의 벤처투자 열기가 식은 것은 투자자와 경영자 모두의 책임이라는 데 서로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코스닥 등록에 대해 엄 사장은 『수익모델을 10월께 발표하고 내년 분위기를 봐서 하반기에 등록할 예정』이라고 말하자 조 사장은 『PC없이 전화가 가능한 VoIP기반의 무선인터넷 폰 수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유니온테크와 비슷한 내년 하반기 정도에 코스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이들은 이밖에도 벤처의 나아갈 방향과 향후 벤처의 전망, 북한의 소프트웨어 능력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친형제처럼 대화를 이어가다 점심 때를 훨씬 넘긴 이후에야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프로필>
유니온테크 엄정렬 사장
△43년 경기 양평 출생
△광운대학교 전자과 졸업
△73∼88년 4월 장미상사 대표
△90년 유니온테크컴퓨터 전무이사
△96년 8월 유니온테크 설립
△현 한국지리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 한국전자상거래협동조합 이사, 한국GIS 전문가협회 이사
에이치피에스 조세현 사장
△68년 충남 예산 출생
△목원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졸업
△목원대 산업경영대학원 경영정보학 석사
△96년 11월 태일정보산업 대리
△96년∼97년 11월 맥스컴 과장
△97년∼99년 9월 하이뷰파워시스템 이사
△99년 9월 HPS 설립
△현 에이치피에스 대표이사, 대전 중소기업지원센터 대표자 회의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