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산업사회로의 전환속에 뒷전으로 밀려온 소비자 권리가 다양한 부분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을 두 가지 면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첨단 전자제품이 등장하면서 과거 제품 자체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들이 무대 전면에서 물러나고 대신 AS행위에 대한 불만이나 부당판매, 부당행위, 과장광고 등에 따른 시정 요구가 전면으로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소보원의 상담통계에서도 가전제품 자체에 대한 불만과 이에 따른 상담은 몇년새 큰 폭으로 줄었다. TV와 VCR, 오디오는 97년에 소비자피해 상담순위 5위(8225건)였지만 98년에는 6위(9418건), 지난해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올해는 TV와 냉장고만 피해상담 순위 30위권에 올라있다.
반면 불친절한 AS와 부당판매, 또는 광고내용과 차이가 있을 때 대응방안을 상담하는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99년 제조·유통업체의 부당행위에 대한 대응방안 문의가 전체 문의 23만68건 중 13만6102건으로 59.2%를 차지했으며 관련법규에 대한 문의도 4만9036건인 21.3%나 됐다. 올해도 구매후 불친절한 배송이나 AS 등에 따른 소비자의 대응방안을 상담하는 사례가 전체의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제품 자체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에서 구매 전과 구매 이후 사용할 때까지 전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과 요구로의 변화)는 가전제품 제조기술의 향상, 제품의 규격화·정형화, 품질의 평준화 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첨단 전자제품 등장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즉, 아직까지 품질이나 사용상의 문제점에 대한 일반적인 파악이 어려운 첨단제품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기존에 나온 모든 전자제품의 품질과 기능 관련 불만이 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L사 고객서비스팀의 한 관계자는 『가전제품은 출시된 후 최소 2년에서 최대 5년이 지나봐야 제품에 대한 결함이나 문제점이 파악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년새 나타난 전자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피해 및 불만유형의 변화는 일시적일 수 있
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부분은 소비자의 요구가 AS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며 첨단제품의 등장으로 소비자의 요구가 더욱 다양해졌고 품질, 기능은 물론 광고와 디자인, AS의 수준 등 세부적인 사항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동통신, 초고속통신망 등 전자제품 사용과 관계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전에는 없던 소비자 피해사례가 생겨나고 이에따른 불만도 확대되고 있다.
이와관련, 재경부는 소비자 피해보상 업종에 이같은 새 업종을 추가해 소비자 피해보상 품목의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을 마련, 시행키로 했다. 이들 추가 업종은 소비자의 이용시기가 짧아 보상규정이 제대로 없었으며 이에따른 분쟁도 잦았
다.
가전제품과 사무용기기가 품질보증기간내 5회 이상 고장나면 아예 교환이나 환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변화된 소비환경에 맞춰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반영하기 위한 정책도 마련했다. 소비자의 요구가 증가하는 것만큼 정책 또한 이에 걸맞게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의 권리와 요구가 다양하게 표출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인터넷 이용의 확대에 있다.
소비자의 피해사례나 제조·판매사의 부당행위, 정부 관계부처의 안일한 대응 등이 신속하게 알려지고 낱낱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이미 대형 제조업체의 판매후 AS는 완전 일반화됐고 중소업체의 AS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추세다. AS가 따라주지 못하면 제품을 팔 엄두를 내지 못하며 「대량판매」를 가장 중요시 여기던 제조·유통업체의 행태가 「판매후」 또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e컨슈머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과거처럼 숨긴다고 그냥 넘겨질 일이 없게 됐다. 인터넷 이용과 전자상거래의 확대로 많은 일들이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며 소비자 관련정보 역시 빠르고 넓게 전파되고 있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