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기업이 망하면 그 기업에 몸담고 일했던 일반 직원들은 그야말로 실직자가 된다. 그런데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인가. 이 말과 딱 떨어지는 상황이 요즘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그동안 공적 자금 운용을 둘러싼 난맥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긴 했지만 막상 며칠전 감사원 감사결과를 접하고는 충격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 5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이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기업체 임직원 5000여명이 모두 7조1500억원의 재산을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숨기거나 해외로 유출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의 임직원 1336명이 부동산·주식·골프회원권 등 5273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이같은 사례들은 그야말로 지금 밝혀지고 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부실 금융기관을 살리거나 정리하는데 들어간 공적 자금의 절반 이상이 회수가 불가능해 그 이자와 기회비용까지 합칠 경우 139조3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하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기업주들이 은닉하거나 해외로 빼돌리기까지 하는 사례들은 기업윤리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공적자금이, 그리고 국민들이 믿고 맡겼던 은행 자금이 소수의 개인에 의해서 헛되이 쓰여졌다니 정말 다시한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를 망쳐놓고도 자신의 재산을 빼돌린 기업주나, 국민의 소중한 돈을 쓰면서 채무자인 기업들이 단 1원도 은닉시키거나 해외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관리하지 못한 은행, 이를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한 정부, 공적자금으로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에만 급급했던 금융기관 임직원들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공적자금을 얼마나 회수하느냐가 큰 변수일텐데 사실상 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하다니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앞으로 부실채권을 없애고 공적자금 손실을 줄이려면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국민 부담의 불가피성과 상황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재정조달 계획과 세대간의 부담일정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적자금 투입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하고도 보유재산을 은닉, 도피하거나 공금을 횡령한 부실기업 경영주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해 지속적인 재산 추적과 좀더 철저한 책임 추궁을 해야 할 것이다.
오기숙 서울 성북구 정릉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