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시대가 막을 올린다.
유럽연합(EU)은 내년 1월 1일을 ‘e데이’로 지정하고 이날부터 유럽 12개국서 사용하는 통화를 유로화로 단일화한다. 지난 3년간 유로화 사용에는 자율원칙이 적용돼 유로화는 ‘장부상의 통화’로 존재했을 뿐 사용실적은 저조했다. 그러나 내년 1월 1일부터 유로화의 사용이 의무화되고 두달간의 유로·회원국 통화(NCU)간 병행사용기간을 거쳐 3월 1일부터는 유로화만이 법정통화로 남게 되기 때문에 유로화는 이제 유럽경제에서 새로운 화두(話頭)로 주목받고 있다.
KOTRA(사장 오영교)는 4일 서울 염곡동 KOTRA 국제회의실서 ‘2002년 주요 수출시장 진출전략 세미나’를 열고 유로화시대 개막 등 내년도 세계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수출전략을 논의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유로화의 본격적인 통용으로 우리 업체는 무역창출효과, 환관리업무 간소화, 환리스크 감소 등을 통해 신규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반면, 역외국가 차별정책에 따른 EU 공동 통상책 실시로 반덤핑 적용 확대, 가격경쟁 심화 등 불리한 측면도 예견된다”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 강구를 강조했다.
◇유럽시장의 변화=유로화 통용은 기존 12개국 통화를 단순 대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그동안 추진돼 왔던 유럽시장 통합을 더욱 가속화해 역내 물리적 국가 개념은 점차 퇴색되고 시장·산업·기업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은 보다 촉진될 것으로 분석된다.
가격체계가 유로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제품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현재 이미 일부 소매업체는 직원교육, 전산시스템과 현금등록기 교체에 따른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가격전환 이전에 미리 가격을 인상하거나 유로화 표시가격을 유리하게 조정하고 있다. 또 통용 초기 민간소비가 일시 위축되는 현상도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통화 단일화로 인해 예상되는 자본이동의 원활화, 기업간 경쟁심화로 인한 M&A 및 제휴 활성화, 생산기지 이전 및 재배치, 물류의 허브시스템 강화 등은 유럽권내 전체 경제와 산업구조를 견실히 해줄 수 있는 핵심요소로 지목된다.
특히 유로화 가격표시제로 인해 제품가격의 비교가 단순·명쾌해짐에 따라 가격투명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이는 곧 상품가격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하면서 유통업체의 시장지배력을 강화시키고 상대적으로 제조업체의 위상 약화가 예상된다. 유통의 활성화는 오는 2005년 완성될 ‘e유럽 프로젝트’와 맞물려 역내 전자상거래 확대와 직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유로화를 의무사용하는 국가는 15개 EU국가 중 12개국. 하지만 영국·덴마크·스웨덴 등 3개 불참국 역시 향후 후속참여를 꾀하고 있어 국제통화로서 유로화의 위상은 달러화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기업의 대응전략=유로화 통용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에 불리한 측면이 많으나, 장기적으로는 교역확대의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유로화 사용은 EU 전체 GDP의 0.4%에 해당하는 금융거래비용의 절감효과가 있다. 유럽기업들은 그만큼의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한국제품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또 유로지역내 거래에는 환위험이 없어지는 반면, 우리나라 등 역외국과의 거래에서는 여전히 환위험이 존재해 유로경제권내의 자급자족체제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또 유로화 통용 초기 유럽거래선이 환리스크를 우리 기업에 전가하거나 취급통화 간소화 등을 이유로 자신에게 유리한 결제통화를 주장해 교역마찰이 우려된다. 특히 유로화 통용을 계기로 더욱 공고해진 EU국간 결속력은 한국 등 저가수출 위주 국가에 대한 반덤핑 공동대응을 야기시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 유로지역의 안정성장은 무역창출효과가 더 크다. 유로화 통용은 금리하락, 물가안정, 환리스크 제거 등의 중장기적 추가성장요인을 안고 있다. 우리 기업은 우선 향후 예상되는 가격 하향 수렴화에 대비, 제품사양 고급화로 소비자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제품가격 인상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기업인 휴렛패커드유럽의 경우 현재 제품별·지역별로 12%까지 가격차가 나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사양·기능·포장 등을 역내국별로 차별화하기 때문에 유로화로 통화단일화가 된다 해도 소비자들이 단순 가격비교를 할 수 없게 하는 가격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로화 통용으로 유럽과의 거래에서 이제는 더이상 달러결제만을 주장할 수 없게 돼 우리 기업들도 유로화의 환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입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또 수출에는 강세통화, 수입에는 약세통화를 사용하는 등 수출입 표시통화를 신축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특히 결제통화로서 유로화의 확대와 달러·유로 환율의 불안정성을 고려해 달러일변도의 외화자금 운용패턴을 탈피, 기업내 외화자금 포트폴리오에서
유로화의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
◇IT 및 디지털제품 시장을 잡아라=유로화는 유럽시장에 IT산업 등 신규시장 창출을 예고하고 있다. EU내 정보화지수와 IT제품의 보급현황을 살펴보면, IT산업과 첨단기술은 영국·아일랜드 등 앵글로색슨계를 축으로 이탈리아·그리스 등 라틴계 국가로 확대·발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무선인터넷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북구지역은 IT제품의 테스트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는 2005년 ‘e유럽 이니셔티브(EU 정보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역내 IT시장의 파괴력은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남부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이태리북부·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 등은 이 시점에 맞춰 IT산업의 급속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기업들의 주요 수출목표 시장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국내 IT제품 생산·수출업체는 현지 소비자들의 수요 자체가 늘 것으로 예상되는 휴대폰, 컴퓨터 및 관련제품, 무선통신기기 부품 등의 경우 프랑스·스페인·그리스·동구 등지로 신규교역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제품수요가 디지털로 고급화하고 있는 DVD플레이어·MP3·디지털TV 등은 비교적 IT화가 성숙된 영국·오스트리아·스위스 시장을 노려볼 만하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