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뱅>(5/끝)국내 반도체산업의 선택

 반도체 빅뱅이 시작되면서 국내 반도체산업계엔 위기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급류에 휩쓸려 설 자리를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특히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반도체산업의 한 축인 하이닉스가 미국 마이크론에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자 위기감은 이제 피부로 와닿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기회는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다질 경우 10년 뒤에도 주력 산업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로에 선 한국 반도체산업=반도체 빅뱅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하이닉스는 결국 외국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살 길을 찾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서 삼성전자는 2위 업체로 떨어질 수 있다.

 파운드리 전문업체를 표방한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는 초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일본과 대만 메모리업체들의 신규 진입으로 인해 미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이에 아남반도체도 외국 전문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력을 모색중이다.

 국내 시장에 거의 의존하다시피한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대만과 중국 등지로의 수출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설계 벤처기업들도 잇따라 등장하나 국내 산업기반의 미비로 세계적인 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다국적 반도체업체들도 틈만 나면 중국으로 옮겨갈 태세다.

 ◇위기의 본질은 안에 있다=국내 반도체업계가 처한 어려움은 언뜻 보면 불황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하이닉스의 임직원만 해도 상당수가 다시 경기만 좋아져도 국내 산업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 변수가 전부는 아니다.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같은 내부적인 문제가 오히려 국내 반도체산업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알려진 대로 우리 반도체산업은 메모리 위주다. 비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설계보다는 생산이 중심이다. 물론 국내 메모리산업은 가장 앞선 공정기술을 갖고 있어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에 이 산업을 내줬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중국에 시장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업계가 뒤늦게 비메모리 산업육성에 나섰지만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다. 비메모리 산업의 핵심인 설계기술의 개발과 관련 인력개발에 너무나도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의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분야는 선진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중국보다 업체수나 인력면에서 앞선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새 틀을 짜자=업계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메모리 반도체산업에서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당위성으론 그렇지만 너무 서둘러선 곤란하다. 어쨌든 세계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한 산업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메모리는 시스템온어칩(SoC)로 대표되는 미래 반도체산업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기술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들과 메모리 기술기반의 SoC 개발을 추진중인 KAIST 유회준 교수는 “우리나라가 메모리시장에서 우위인 만큼 이를 발판으로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면서 “메모리에 일반 로직을 결합할 수 있는 IT메모리를 개발하고 이를 지적재산(IP)으로 유통시킨다면 국내 업체들도 램버스나 ARM 못지 않게 기술만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뒤진 비메모리 분야도 해외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해외 선진업체와의 제휴나 합작이 필수적이다. 해외업체가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둘 경우 ‘금상첨화’다.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에 생산기지를 둔 반도체 소자나 장비 업체들은 있어도 연구소를 둔 기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한국에 생산기지를 둔 반도체 패키징 업체들도 인건비가 싸고 시장도 커지는 중국을 향하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도 한국에 연구소를 둘 바에야 중국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이래선 한국의 설 자리는 없다.

 패키징과 같은 저부가가치 기술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첨단 기술만큼은 한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기술도 이전받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 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산업 정책도 ‘업체’가 아닌 ‘산업’을 육성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국이 세계 반도체산업의 구조개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가 제대로 선택하고 집중할 경우 요즘과 같은 혼란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