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today.com=본지특약】 섀넌 버넷은 인기 TV시리즈 ‘뱀파이어 해결사(Buffy, the Vampire Slayer)’의 비공식 팬사이트(http://www.theslayer.net)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줄거리와 주인공 소개에서 다시보기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볼거리가 매우 풍성해 꽤 높은 접속률을 자랑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이 사이트에 들러본 네티즌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 가장 인기있던 동영상 코너가 사라지는 등 이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운영자인 버넷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이 사이트에 게재된 콘텐츠의 저작권을 가진 업체들이 저작권 침해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문제가 되는 내용을 사이트에서 전부 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버넷은 그동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버넷은 나중에서야 법리에 그토록 밝은 곳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녀는 “저작권 침해라며 문제를 삼은 곳은 알고보니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였다”며 “아이도 둘씩이나 있는 사람이 그 정도 분별력도 없을까봐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대기업들의 활약상이 눈부시게 늘면서 인터넷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전혀 문제가 없던 일이 요즘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넷이 경험한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최근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일부 재벌 기업이 인터넷 세계에서 행사하는 지배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전문 조사업체 주피터미디어메트릭스(jmm.com)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불과 14개 대형 인터넷 관련 업체가 전체 인터넷 사용자 중 60%의 인터넷 사용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같은 조건에 해당하는 업체가 110개에 달했던 2년 전보다 크게 뒷걸음질친 것으로 일부 업체에 의한 ‘중앙집권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터넷은 점점 개방화되기는커녕 폐쇄적으로 흐르고 있다.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대기업들이 본래의 사명인 ‘영리추구’를 위해 법률 전문가들을 고용해 저작권·상표권·특허 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일부러 불법 사이트를 찾아 이잡듯이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대형 업체의 종횡무진 대활약상에 대해 “인터넷이 이제는 일부 업체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탄식마저 나오고 있다.
인터넷 분야의 선구자인 컴퓨터 과학자 에드 크롤은 “더 큰 문제는 대형 업체들의 지배력이 날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크롤은 “학자들이나 정부 기관 종사자들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토론을 펼칠 수 있었던 인터넷 초기 시절이 그립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넷에 상업화 물결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 미 국립과학재단(nsf.gov)이 기업체에 대한 인터넷 활동 규제를 풀고 나서부터다. 오늘날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로 성장한 아마존닷컴(amazon.com), 미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업체 아메리카온라인(aol.com) 등이 활동을 개시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러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 역할을 했던 인터넷의 모습이 이제는 크게 퇴색해 팝업(pop-up) 광고와 등록창(online registration form)이 판치는, 신용카드가 없으면 접속할 데가 없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팝업 광고는 공해의 경지에 올랐으며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다며 툭하면 눈앞에 나타나 인터넷 서핑을 가로막는 등록창은 짜증나는 존재다.
물론 상업화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com)의 브래드 스미스 대표 변호사는 “일부 기업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어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하는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인터넷 콘텐츠가 오늘날처럼 다양해질 수 있었던 것은 기업들이 그만큼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초에 인터넷을 개발한 사람들은 상업화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정치선동에 이용하든, 상업주의에 이용하든 자유였다. 초창기의 이같은 논리는 상업주의와 비상업주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성립됐다.
그러나 인터넷의 무게 중심이 상업주의로 기울면서 기업들은 돈이 될 만한 콘텐츠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영화 한편이 모두 들어있는 동영상 파일 등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표적이다.
오히려 문제는 맛보기용 동영상이나 요약본 등 법률 적용이 쉽지 않은 경우다. 그러니 이 경우도 기업들이 달려들면 콘텐츠를 이용하는 측에서 대부분 일찌감치 물러서기 때문에 법정까지 갈 일이 많지 않다.
인터넷 법률 전문가 호르헤 콘트레라스는 “그림도, 영상도, 소리도 없는 인터넷 사이트가 재미 있을리는 만무하다”며 “그러나 법이 오프라인 저작권자와 더 가까운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각도에서 MS의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로 통하는 닷넷 전략은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사이버 중앙집권화의 ‘최고 단계’일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닷넷이 어떻게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닷넷은 이름·신용카드·개인정보 등 닷넷이라는 틀 속에서 이뤄지는 네티즌의 일거수 일투족이 남긴 흔적을 기업체의 영리추구에 손쉽게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비영리적인 사이트도 아직 많다. 다만 사이버 공간 도처에 널려있는 ‘상업주의’라는 간판에 가려 찾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마이클최기자 michael@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