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대부분 디지털경제 시대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전사적자원관리(ERP) 등을 비롯해 각종 솔루션을 도입하면서 기업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룹웨어 등으로 자연스럽게 의사공유의 문화가 생겨나는가 하면 신속하게 결정하는 결재문화도 탄생했다. 물론 경직성을 탈피하는 경영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신IT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들도 있다. 세대별로 따져보면 40대 이후의 중간관리자급이 될 수도 있고, 지역별로 보면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각 지방의 지사들이 이에 포함될 듯하다. 이는 신IT문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결국은 사람인데, 사람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IT교육이 체계화하지 못하다보니 새로운 솔루션이 도입되더라도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안에 따른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사례1. A제약사 강원도 영업지사의 김 과장은 며칠전 본사로부터 개인휴대단말기(PDA)를 받았다. 영업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영업혁신과 더불어 매출 증대 효과를 노리겠다는 본사의 취지에 의해서다. 재택근무도 가능해진다는 점에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이제는 손으로 직접 거래현황을 작성하던 때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느낌 때문이다.
주문도 전화상으로, 문서도 대충 수기로 작성해 사무실로 들어가 여직원에게 넘겨주면 그것으로 업무가 끝나던 이전과 비교해 이제는 PDA에 직접 주문을 넣고 본사의 시스템에 맞도록 재구성 과정도 거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심리적 부담감이다. 김 과장은 ‘영업하는 데 무슨 컴퓨터’라는 생각에 마흔이 넘도록 컴퓨터와 관련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PDA를 직접 만져야 하니 보기만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든다. 게다가 본사도 아닌 강원도 지사이기 때문에 PDA와 관련한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례2. S사는 기업의 경쟁력 극대화를 위해 ERP시스템을 구축해 운용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ERP구축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보시스템실 담당자들이 분석한 결과 현업에서 제대로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업부서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영업하기도 바쁜데 PC에 일일이 기록해야 하는 부담감뿐만 아니라 너무 어려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반발이다.
사례 3. A사의 구매부 이 과장은 요즘 아침이면 피곤과 두려움에 출근길이 무섭다. 지난달 말에 새로 구축한 구매관리 프로그램 교육을 일주일째 받고 퇴근 후에도 남아서 예제문제를 풀면서 복습하느라 심신이 많이 지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이 같은 프로그램 교육에 넌더리가 난다. 또한 구매관리 책임자로서 업무에 별 효용이 없는 프로그램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자기계발에는 별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회사가 어떤 시스템을 도입해서 어떻게 운용해갈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남의 회사에 일당을 받아가며 누구 대신 출근하는 기분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장은 시스템 없이 장부로 견적관리하던 10여년 전을 떠올려 보며 푸념한다. ‘그 때가 더 좋았는데….’
발텍컨설팅코리아의 윤호중 선임컨설턴트는 세 가지 사례를 진단한 결과 광범위한 문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IT와 프로세스를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망상’이라고 단정짓는다. 이제 IT도입으로 인해 기업의 프로세스, 즉 업무는 IT없이 생각할 수 없게 됐음에도 아직도 기업의 업무를 ‘IT’와 ‘IT가 아닌 것’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교육도 이제는 IT교육과 비IT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회사가 관련 업무에 대한 교육은 하면서 IT교육을 별도로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대우건설의 배은화 전산실장은 “IT와 관련된 교육은 신입사원의 전체 교육 과정을 진행할 때 행하는 것이 전부”라며 “그 이외에는 별도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전에는 워드나 액셀 등 간단한 기능을 위한 교육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것 자체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직원들이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된 것이다. 배 실장은 대기업이야 그나마 자체 시스템통합 업체를 통해 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중소기업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IT솔루션 자체를 다루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로공단에 위치한 삼홍사의 정달진 실장은 “공단지역내 제조업체들은 전산실 인력이 서너명에 불과해 시스템 유지에도 급급하기 때문에 별도로 직원들 교육을 시키는 것이 힘들다”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직원들의 이해도가 떨어져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이 신입사원 당시에 잠깐 IT교육을 시키든지, 혹은 ERP 등 솔루션을 도입할 때 가동 전후로 해서 사용교육을 시키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체계화된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만들어져 진행돼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부 경영진은 기업의 일부에서 다른 업무 교육도 바빠 시키지 못하는데 굳이 시간을 쪼개 IT교육을 낸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역설한다.
과연 IT교육은 필요없는가. 이에 대해 윤호중 선임컨설턴트는 “IT교육은 기업 내부의 정보화를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IT교육을 통해 조직원은 프로세스 지식→기능별 지식→정보지식 순으로 지식을 체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같은 사내 IT교육은 기존 조직원의 체화된 지식이 객체화돼 공유·전달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IT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IT교육은 ‘변환 학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단순히 IT솔루션의 기능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다가 현재 사용되지 않는 IT솔루션들이 많이 있다. IT 교육은 기업의 환경변화에 대한 변화관리의 한 축으로 변환학습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은 가고자 하는 비전을 수립하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며 전략 수립을 위한 행동 프로그램(action program)을 계획해 실천한다. 그러나 기업은 경영환경의 변화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변화관리’를 시도하는 것이고, 변화관리는 시스템화돼 프로그램으로 준비돼야 하며 이를 위한 기업교육은 필수적인 액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변환학습(TL:Transformative Learning)은 이를 체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이미 선진기업에서는 널리 활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 같은 라이프사이클적인 기업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는 기업들의 IT교육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일련의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새로운 조직구성원이 충원됐을 때 기존의 프로세스를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 시행되는 단발성 내지는 단기적 기업교육으로는 ‘변화’하는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변화하고자 하는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변환학습이 프로그램화·시스템화돼 기업의 프로세스로서 실행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교육의 세부사항으로서 향후 기업이 고려해야 할 포인트는 △기업의 비전과 전략에 적합한 기업교육 계획을 수립하고(fitness) △피교육자인 조직구성원의 개별성을 존중하며(just for you) △피교육자가 교육을 수렴함에 있어 편리성을 제공하고(accessibility) △기업과 구성원간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설정돼 있으며(collaboration) △기업 변화관리의 한 축으로서 변환 학습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transformation)이다.
결국 IT교육은 단순한 솔루션 교육이 아니라 기업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변화관리의 한 축으로서 이해돼야 한다. 신기술 도입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IT교육이 체계화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때란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