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85)전화를 발명한 사람들-웟슨(중)

전화의 발명과정에서 극적인 요소 하나는 벨이 산(酸)을 자신의 옷에 엎지르고 웟슨에게 한 ‘웟슨씨, 이리 좀 와보게’라는 말이다. 이 말은 벨이 산을 엎질렀다는 상황이 전제되었을 때는 극적 요소가 되지만 만일 벨이 산을 자신의 옷에 엎지르지 않았다면 그 극적 요소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벨의 실험노트에는 당시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그때 나는 송화구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웟슨씨, 이리 좀 와보게.”

 벨의 노트뿐만 아니라 웟슨의 노트 어디에도 산이 엎질러졌다는 언급은 없다. 그리고 몇년 뒤에 전화특허권에 대한 소송에 휘말려 법정에서 증언할 때도 웟슨은 벨이 자신을 부른 소리가 산을 엎지른 후 무의식중에 나온 구조요청이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벨의 옷에 산이 엎질러졌다는 말은 어떻게 전해 내려오는 것인가.

 벨과 웟슨의 전화를 통한 음성전달 실험은 미완성된 새로운 전화 송신기를 마무리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는 벨이 특허사무소에 제출한 고체음성코일 송화기가 아닌, 유체송화기가 사용되었다. 그 유체송화기에는 산이 포함돼 있었고 벨이 그 산을 엎지를 수 있다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만약 벨이 정말로 산을 엎질렀다면 벨은 기계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황하여 누군가에게 그것에 관해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전화를 통해 전해진 첫 음성이 벨이 자신의 옷에 엎질러진 유체송신기에서 새어나온 산 때문에 구조요청을 한 것이라는 말은 50년이 지난 후 웟슨이 강연과 그의 자서전 출판을 통해 드러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벨의 전기를 쓴 작가 로버트 V 브루스는 웟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웟슨이 좀 더 드라마틱한 다른 사건과 그것을 혼동했을 것이다.”

 토머스 A 웟슨(Thomas A. Waston).

 전화 발명과정에서 웟슨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이미 밝혔듯이 전신으로 목소리를 전송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나 권선코일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벨의 생각을 기계적으로 제품화시킨 사람이 바로 웟슨이다.

 이후에 두사람은 전화 개발에 성공했고 곧바로 사업화에도 성공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웟슨은 벨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1877년 벨이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웟슨에게 전화기 수리 책임을 맡길 정도로 웟슨에 대한 신뢰가 컸다.

 하지만 웟슨은 전화사업에 싫증을 느끼고 벨의 곁을 떠났다. 1881년 웟슨의 나이 27세 때였다. 웟슨은 곧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러가지 종류의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분히 엎지르지도 않은 산을 엎질렀다고 혼동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전화특허 로열티 수입으로 주머니를 두둑이 한 웟슨은 긴 휴가를 갖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거기서 결혼을 하고 커다란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웟슨은 이 과정에서 시골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점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웟슨은 곧 보스턴 교외에 기계작업장을 차렸다.

 사업은 잘 되었다. 너무나 잘된 나머지 1890년대에 웟슨은 새로운 사업을 추가했다. 그것은 조선업이었다. 그는 해군이 발주하는 구축함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조선업체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조선업은 배를 실어 나르는 조류처럼 불안정했다. 1903년 웟슨의 운이 바뀌었다. 웟슨이 만든 회사의 이사회가 웟슨을 사장에서 해임했다. 불굴의 웟슨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고, 그는 지질학자가 되었다. 웟슨은 조선소 사장 시절 매사추세츠 기술연구소에서 지질 및 고생물학 분야의 3년 과정을 이수한 경험을 살려 관심을 땅으로 돌렸다. 그는 다른 지질학자 한사람과 팀을 이뤄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를 탐사했다. 돈이 될 만한 철광석 매장지를 찾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1910년, 56세의 실직한 웟슨은 무대 쪽으로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배우가 된 것이다. 웟슨은 잉글랜드에 있는 한 극단회사에 들어갔다. 전형적인 단역배우의 역할이 주어졌지만 웟슨은 언제나 그 일을 즐겼다. 다음 시즌이 끝날 즈음 웟슨은 셰익스피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몇몇 배우들과 함께 그들 자신의 지방순회극단을 만들기도 했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하여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 ‘니컬러스 니클비’ 등의 무대용 판본을 쓰기도 했다.

 1912년 58세로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서기 시작한 웟슨은 매사추세츠 브레인트리의 고향으로 돌아가 아마추어 연극 연출과 강연으로 인생을 보냈다. 그의 단골 메뉴는 전화발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당시 수많은 인터뷰와 강연중에 웟슨은 언젠가 한번 전화실험이 성공하던 그 운명적인 날 벨이 자기 바지에 우연히 산을 쏟았었다고 최초로 언급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진리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의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을 뒤바꾼 위대한 발명들’을 지은 이라 플래토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체송신기로 실험을 하던 벨은 전선을 손질하면서 산이 든 송신기 앞에 서 있다. 하숙집 다락의 다른쪽 방에서 웟슨은 벨이 방들을 연결하고 있는 전선을 통해 음악신호를 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 떨어진 방에서 웟슨이 대기하는 동안 하루종일 실험을 한 후 약간 과민해 있던 벨은 우연히 유체송신기에 부딪쳐 산을 엎지르고는 그것을 바지에 온통 뒤집어쓴다. 갑자기 지독한 메스꺼움이 밀려와 그는 엎질러진 것을 치우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웟슨씨, 이리 좀 와보게.”

 놀란 웟슨은 수신기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듣는다. 그 단어들은 톤은 낮았지만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순식간에 웟슨은 홀 쪽으로 날 듯이 내려가 흥분하여 정신없이 외친다. “벨씨, 당신이 한 말을 모두 들었어요.”

 아마 산 때문에 벨의 바지가 탔겠지만 벨은 남루해진 바지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사람은 자신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깨닫는다. 전기의 특성을 이용해 전선을 타고 전달되는 말하는 기계를 최초로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벨과 웟슨은 감격한다.

 저자는 이 추측 이외에도 두가지를 더 추측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는 전화의 발명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내뱉은 말들은 의도된 것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산을 엎지른 것과 관련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1915년, 최초의 대간 전화서비스 개통식을 하는 동안 벨은 뉴욕의 사무소에 앉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웟슨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웟슨 씨, 이리 좀 와보게.”

 웟슨이 대답했다. “예, 가지요. 벨씨, 그런데 일주일 이상 걸리겠는데요.”

 그 통화는 20달러70센트의 비용으로, 연결되는 데 23분이 걸렸다.

 본 내용은 ‘여강출판사’에서 번역 발간한 ‘인간의 삶을 뒤바꾼 위대한 발명들’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