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래서 스포츠가 미국의 가족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가족주의에 심대한 변화가 생겼다. 비디오게임이 미국 문화인 스포츠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비디오게임은 긍정적인 역할외에 부정적인 면도 드러내고 있다.
미국에서 부모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비디오게임 등 인터액티브미디어다. 얼마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을 초청해 교육커리큘럼 등을 소개하는 ‘백투스쿨나이트’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여기서 선생이 부모가 집에서 어떻게 게임과 채팅을 통제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가르쳐 줄 정도로 비디오게임은 미국 사회내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물론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부모들이 먼저 컴퓨터를 잘 알고 아이들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으로 30분을 보냈고 학부모들의 질문도 받았다.
교사들이 미디어이용에 대한 지도교육이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부모들도 아이들 게임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 성적 올리는 방법과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대한 내용에만 관심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미국에서 인터액티브미디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실제 주류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사회가 게임중독에 대해 걱정만 하고 있을 때 이미 미국의 유수대학들은 왜 게임이 다른 미디어보다 더 사람들을 몰입시키는지 그 이유를 캐고 또 그 심리적 과학적 탐색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게임을 해야한다 말아야한다, 중독성이다 아니다, 마약같은 것이다 아니다 하는 소모적 찬반논쟁, 흑백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문화콘텐츠선진국은 왜 게임이 그런 파괴력과 효과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사회와 심리, 과학, 교육, 의료 등에 인간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각 분야에서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스탠퍼드, MIT, 그리고 USC 등 엔터테인먼트기술과 산업에서 내로라하는 세계적 대학 연구소들이 인터랙티브미디어로서의 게임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MIT 미디어랩은 메이저 톱 프로젝트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대규모기금을 지원받아 ‘Game to Teach’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USC와 스탠퍼드는 미국과학재단과 공동으로 게임이 가져오는 가상현실의 체험감(presence)과 학습에 대한 대규모연구를 착수하기 시작했다. 유럽도 게임상의 현존감이 미치는 파급효과를 인간, 사회, 학습, 의료 등으로 확장시켜 그 파급효과를 조사하고 기술개발에 반영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유럽연합 차원에서 올해 착수했다.
한국도 이제 온라인게임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도 영화,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 관심있는 전문가들은 모두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 중에서도 자국문화를 간직하면서 영화,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서 이렇게 빠른 발전을 보인 나라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발전에 걸맞게 우리도 이제 차세대 문화콘텐츠 발전에서도 앞서가야 할 것이다.
기술과 산업만이 아니고 그것이 문화, 교육, 인간, 복지에도 폭넓게 기여할 때 그것이 진정한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또 한번의 유행산업으로 끝나버릴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중국이란 거대한 경쟁자가 바로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 정부와 대학이 나서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고급인재들이 자연적으로 모여드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그 어떤 산업도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의류산업은 중국에 처졌지만 이탈리아의 의류산업은 여전히 첨단으로 남아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승호 / 美 USC 객원교수·인터액티브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