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낮 2시 서울 종묘공원. 모여든 1000여명의 네티즌들이 동시에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불러외쳤다. 한 역사연구기관이 만세 운동을 경험해보자고 인터넷으로 제안해 이뤄진 행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석자들은 10분동안 만세를 외치고, 아리랑을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날 번개 모임은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도 펼쳐졌다 한다.
언론에선 이러한 집단행동을 ‘플래시몹(flashmob)’이라고 불렀다.미국인 하워드 라인골드씨가 지난 2002년 동명 저서를 내놓으면서 신종 용어로 정착했다. 플래시몹은 인터넷 접속자가 한꺼번에 증가하는 ‘플래시크라우드(flashcrowd)’와 같은 인식 아래 행동하는 집단이라는 ‘스마트몹(smartmob)’의 합성어다. 따라서 네티즌이 인터넷이나 e메일, 문자메시지 등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모여 미리 약속한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집단행동을 의미한다.
뉴욕 네티즌들이 처음 시작했다는 플래시몹은 이제 인터넷이 보급된 나라의 네티즌에게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네티즌들도 지난해 가을 서울 한복판 명동 길거리에 드러눕는 ‘시체놀이’를 벌여 화제를 모았다.
국내외 플래시몹 정보를 다루는 웹사이트나 카페모임도 여럿 있다.
플래시몹 애호가(이런 말을 붙일 수 있는 지 모르겠다)들은 그러나 지난 1일 만세 번개모임을 ‘플래시몹’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플래시몹이 단지 공공장소에서 엉뚱한 행동으로 깜짝 쇼를 벌여 일반인을 놀라게 하는 놀이일 뿐 이라고 본다. ‘만세 운동’과 같이 특정한 목적 의식을 갖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렇다 해도 ‘인터넷을 이용해 현실세계로 나오는 공동체의 경향’이라는 흐름에서 보면 ‘만세운동’이나 ‘시체놀이’ 모두 ‘플래시몹’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월드컵 때의 네티즌 번개 모임이나 대선 때의 네티즌 투표 참여 운동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회가 안정된 나라에선 초현실적인 유머나 축제의 성격이 짙고,우리나라와 같이 아직도 변화가 심한 나라에선 목적의식이 나타날 수도 있다.
80년대에 ‘람보놀이’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지하철문이 열리면 뛰어 들어가 ‘난 람보다’라고 외치면서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문이 닫히기 전에 나오는 장난이다.
플래시몹도 익명의 다수가 참여한다는 점을 빼면 람보놀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만세운동’이든 ‘시체놀이’든 네티즌들이 그냥 웃고 즐기는 놀이문화 쯤으로 이해할 일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