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엔씨소프트 E&G 정준호 과장

‘리니지 2’가 처음 세상에 공개됐을 때 많은 유저들은 게임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왜냐하면 팬터지 세계관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선남선녀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드워프의 여성 캐릭터는 기존에 어떤 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귀여운 인간형으로 묘사돼 전문가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캐릭터들의 창조자 정준호 과장은 “창조는 상상력과 현실의 요구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 특명! 미(美)를 창조하라

“발상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롤플레잉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서양식 롤플레잉의 정통성을 모두 취하고자 했어요. 초기 원화들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리니지 2’의 기본적인 입장은 관대하게 캐릭터를 만들자였습니다.”

‘리니지 2’의 모든 캐릭터를 창조한 엔씨소프트 E&G 정준호(29세) 과장의 말이다. ‘리니지 2’는 ‘리니지’의 최소한의 선만 유지하고 퓨전 스타일의 팬터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작업했다고 한다.

알파 버전에서 ‘리니지 2’의 캐릭터는 3등신부터 8등신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고 원화를 3D 그래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토의를 통해 얼굴과 신체 균형을 잡아 나갔다.

그래픽팀의 멤버들은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미(美)를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한 의지가 섹시함으로 나타난 면도 있었다. 지금의 ‘리니지 2’의 종족들은 모두 선남선녀로 채워져 있는 독특한 게임이 되고 말았지만 초기 휴먼과 오크 종족들은 훨씬 더 투박했고 정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만화가가 꿈이었던 만화광

정준호 과장의 꿈은 원래 만화가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그림 그리는 것을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해 상업 미술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제대를 하고 IMF가 터지자 쏠쏠한 벌이가 됐던 출판사들이 붕괴됐고 게임 분야로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1998년 오락실을 강타한 역작 이지투디제이(EZ2DJ)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유명해졌다. 그리고 CCR의 거쳐 1999년 12월에 엔씨소프트에서 제의가 들어와 그래픽팀으로 입사 했다.

“운이 좋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만 전 만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집 근처의 대여점에서 항상 만화를 빌려봅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순정 만화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판 만화를 봤다고 생각하죠. 하하하….”

실제로 몇몇 만화에 대한 얘기를 은근히 끄집어 내자 눈을 빛내며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줄줄이 나열했다.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게임보다 만화가 더 좋다는 말이 진실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만화가의 꿈은 접었다고 한다. 현대 만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수준이 매우 높고 여러 명의 어시스트를 거느리며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는 그럴 자신도 없는데 다가 다른 사람과 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 작업 프로세서 이해가 관건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업 프로레스를 이해하는 겁니다. 그림만 그릴 줄 알고 그래픽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전혀 모르면 헛고생을 하게 되죠. 그만큼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적어지게 되는 거고요.”

정과장은 자신도 ‘그림만 예쁘고 게임상에서 실제 구현될 수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리니지 2’를 시작하면서 3D 그래픽을 공부했고 그것은 원화와 3D 렌더링의 틈을 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캐릭터가 아무리 이쁘고 아름다워도 철저히 균형잡힌 입체 비례를 원하는 3D 그래픽 입장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사례가 매우 많다.

이를 극복하고 원활한 작업 진행을 위해서 원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3D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말이 쉽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힘든 얘기다.

그는 이제 새로운 프로젝트에 몸을 던질 작정이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일본과 미국에 뒤지지 않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과장의 목표다.

“엔씨소프트가 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차기작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리니지’와 ‘리니지 2’ 밖에 없는 회사라는 말이 많은데, 앞으로 정말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