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놀라운 선택을 했다.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퇴진시키고 영국 출신인 하워드 스트링거 부회장을 후임으로 내정했다. 반 세기 소니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CEO가 탄생한 셈이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니의 이번 CEO 교체를 접하면서 몇 가지 단상이 뇌리를 스친다. 소니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가 첫 번째다. 외국인 CEO의 탄생도 관심거리지만 이데이 회장의 퇴장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소니의 외국인 CEO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 두 번째다. 만약 삼성전자의 CEO 자리에 외국인이 내정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삼성이 만약 지금의 소니와 같은 상황을 맞는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점이다.
소니는 CEO 선양(?)이 전통처럼 굳어져 왔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부터 2대 모리타 아키오, 3대 오가 노리오, 4대 이데이 노부유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선대 CEO의 선양을 거쳐 화려하게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이데이의 퇴진은 결코 선양의 모양새가 아니다. 실제 지난 1월 말 이데이 회장은 10여명의 경영진을 자택으로 초청해 사퇴 의사를 처음으로 공식화하고 ‘이데이-스트링거 공동 CEO 체제’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사외 이사진이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이번 하워드 스트링거 부회장의 CEO 발탁은 사외이사들의 반란(?)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스트링거는 소니의 CEO 중에서 제대로 된 선양을 거치지 않은 최초의 인물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달게 됐다.
소니가 이런 볼썽사나운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한 분석이 있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사실은 변화와 혁신이라는 소니의 본질을 망각해 가고 있는 데 따른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데이 회장의 퇴진은 단순히 저조한 경영 실적 때문으로 보기 힘들다. 이데이 회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니를 세계 최고 반열의 기업으로 올려 놓은 인물이다. 소니가 갈수록 공룡화돼 ‘그들만의 잔치’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니는 이부카의 트랜지스터, 모리타의 워크맨, 오가의 콤팩트디스크, 이데이의 플레이스테이션 등 변화와 혁신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이같이 화려한 성공의 뒤안길에는 거대한 21세기 조류에서 비켜난 아픔이 숨어 있다. 브라운관에 집착하다 LCD와 PDP를 놓쳤다. 게임과 콘텐츠에 빠져 휴대폰에서 쓴맛을 보았다. 콤팩트디스크로 인해 MP3플레이어를 외면했다. 소니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던 성공의 결과물이 오히려 변화의 발목을 잡은 탓이다.
일본인도 외국인 CEO의 등장에 매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소니는 일본의 자존심이며, 소니 CEO는 그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이런 자리를 외국인에게 내주었으니 당혹감과 상실감이 클 것이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CEO로 외국인을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오너가 있는 만큼 전문경영인이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충격은 덜할 수 있다. 소니는 다르다. 주주들은 있지만 오너는 없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삼성전자가 지금의 소니와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결코 소니의 선택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에는 CEO 물망에 오를 외국인조차 없다.
여기서 소니(일본)와 삼성(한국)의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너십 유무와 글로벌화 전략의 차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삼성이 승리자다. 삼성은 소니처럼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도록 놔두지 않는 오너십과 자체 예방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희망사항일지 모르겠지만 따라서 소니의 상황을 삼성에 비유해 생각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 다만 부러운 게 있다면 삼성전자에도 소니처럼 외국인 CEO 후보들이 있었으면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