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경호 엔터기술 사장(4)

이경호 엔터기술 사장 (4) 일본시장 공략

 

99년 어렵게 휴대형 노래반주기를 양산했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당시 국내는 경제상황과 문화적 이유 등에서 시장 확산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90년 중반부터 염두 해 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3년 동안 도전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실패의 첫 원인은 시장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재 인구만 보고 뛰어든 게 실수였다. 가정의 실질 소득이 낮은 중국 시장에서 가정용 노래반주기는 너무 앞서 나가는 고가 제품이었던 것이다. 또 그들의 무역 관행도 문제가 됐다. 30만원 수준에 책정된 판매가가 관세와 현지 마진 등을 더하고 나면 그 두 배가 넘는 60만원이 됐던 것이다. 쏟아 붓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더 큰 결과를 얻기 힘든 시장임을 깨달았다. 시기 상조였다.

이를 경험삼아 더 넓고, 더 잘 살고, 노래 문화에 여유로운 곳을 찾기로 했다. 이렇게 뚫기 시작한 새로운 판로가 바로 일본, 미국, 필리핀이었다. 때마침 일본에서 희소식이 왔다.

2000년 어느 날 일본 산요(SANYO)의 직원이 일본과 한국의 전자상가 등에서 산발적으로 보급되던 우리 제품을 보고 공급해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절호의 기회였다. 일본은 소비자의 구매 능력이 가능하고 가라오케가 활성화 된 국민 문화를 지녀될 것 같았다. 또 일본의 대형 전자 제품회사에서 이름도 없었던 한국의 중소 기업 제품을 수입하겠다고 찾아 온 것 만으로도 고무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 바이어는 가격보다도 품질과 기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품질 기준을 만족시켜야 본격적인 거래가 성립 될 수 있었다. 사실 국내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려다가도 일본의 품질 기준을 맞추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산요의 엄격한 품질 테스트가 시작됐다. 제품 강도 테스트, 200도 영하에서 견뎌 내기, 또 다른 나라보다 2배나 강한 8000볼트 고압 전류 테스트 등 그 기준의 까다로움은 말할 수 없었다. 한 번은 고압 전류 테스트가 있었는데 같이 실험에 참가한 일본 TV는 고장 났는데 우리 노래반주기는 끄덕 없이 견뎌 냈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장장 1년에 걸친 제품 심의 끝에 드디어 공급이 결정됐다. 산요에서 유통시키는 한국 제품이 완제품의 형태로 일본시장에 진출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드디어 2001년 2만대가 첫 선적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일본에서 급전이 날라왔다. 공급한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서 일본 검수관을 통해 검수를 통과하고 보낸 것인데 이상하게 보조마이크에 잡음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일본으로 향했다. 모든 제품에 똑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한국과 다른 일본의 습도 때문에 보조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산요는 직접 검수를 진행했기 때문에 반품을 주장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수입자 책임이지 원칙적으로는 우리 회사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산요는 크게 당황했고 우리의 결정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2만대 전량 리콜을 약속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일본 시장의 미래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산요는 이런 우리를 바라만 보진 않았다. 산요는 추가 주문으로 손해를 만회해 주겠다는 애정 어린 답변을 주었다.

이렇게 맺은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 가라오케 종주국인 일본은 지금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2001년 산요를 통해 ODM방식으로 연간 100억원대의 공급계약을 시작했고 2003년까지 19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고객을 생각하고 미래 시장을 내다 본 일보후퇴가 큰 결실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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