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환경, 출연연구기관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IMF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벤처와 대학 등으로 떠났던 국책 연구소 연구원들이 높은 연봉과 직업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오직 ‘연구 환경’만을 보고 출연연으로 컴백하고 있다.
특히 일부 연구원은 온갖 이직 유혹 등을 뿌리치고 한 우물만을 파며 국가차원의 관리 대상으로까지 연구과제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등 ‘국보급 연구원’으로 평가받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20일 출연연에 따르면 벤처창업이나 대학으로 이직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및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박사 연구원이나 평생 한 우물을 파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사들은 “우리 나라에서 ‘연구다운 연구’를 수행하는 데 아직까지 출연연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 교수직 버리고 컴백=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이은성 박사(39)는 출연연 사상 처음으로 최근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유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1997년 이후 벤처창업으로 연구원들이 대거 빠져 나갔다 다시 돌아온 경우는 많아도 소위 ‘고연봉에 안정적인 직장’으로 알려진 교수직을 버리고 컴백한 사례로는 드물기 때문이다.
1990년 표준연에 들어온 이 박사는 지난 2002년 광학관련 연구를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일념에 경남의 모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박사는 “최근 국내 대학들은 지원하는 학생들이 줄어 들면서 연구자들이 (연구보다) 신입생 유치 경쟁 등에 나서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교육도 중요하지만 연구원들에게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박사의 경우처럼 컴백은 아니어도 ‘오로지 연구’만을 위해 이공계 명문대학 교수직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출연연구기관으로 이직한 경우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에 근무하던 박종화 박사(39)는 ‘고액연봉이나 정년보장도 다 싫다’며 올해 초 생명연의 유전체연구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연연에도 국보급 연구원=출연연 사상 처음으로 국보급 연구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 박사(47)는 지난 98년도 일본 쓰쿠바 대학의 문부교관 자리를 포기하고 귀국한 경우다.
김 박사는 이후 세계 물리학계의 56년간 숙제로 여겨지던 ‘금속-절연체 전이 현상’(MIT) 규명에 몰두한 결과 현재 과제 전체가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김박사는 “연구 예산을 확보하는 데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긴 했지만 ETRI였기에 연구 성과 배출이 가능했다”며 “연구결과 발표 당시 스웨덴과 일본보다 7∼10개월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출연연의 연구지원 시스템 덕이었다”고 밝혔다.
<>“벤처보다 연구가 더 좋아”=벤처 창업으로 성공 목전에 이르기도 해 ‘돈맛’도 알고 경영이 뭔지도 경험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박동인 박사(53)는 결국 연구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컴백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연구원 생활이 그리웠기 때문.
이외에도 ETRI와 생명연 등에는 벤처창업을 했다 포기하고 돌아온 연구원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IMF를 겪으며 정부의 창업 지원 아래 너도나도 벤처 창업에 나섰으나 결국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연구직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연구원과 창업, 대학교수로의 보직 교환 등 인력이동이 원만한 선진국형 인력 교류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