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IT 제품이 디지털로 옷을 갈아 입으면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플래시 메모리·하드디스크·블루레이 등 각 진영의 움직임도 숨가빠지기 시작했다. 차세대 저장장치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IT 저장 기술과 산업계 동향을 5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지난달 12일 삼성전자는 ‘16기가(Gb) 플래시 메모리’ 개발을 발표했다. 삼성은 대용량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종주 업체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알렸다.
이날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메모리의 대용량·집적화에 힘입어 조만간 플래시 메모리가 하드디스크(HDD)를 대체하면서 저장장치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삼성 발표 후 정확하게 일주일 후 히타치와 IBM 합작사인 히타치GST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테라(TB)급의 3.5인치 HDD 시제품을 선보였다. 1TB는 블루레이 등 차세대 DVD 20배에 달하는 용량이다. 히타치 측은 “하루 4시간 정도의 TV 프로그램 1년 분량을 저장할 수 있다”며 새로운 하드디스크 시대를 선언했다.
다시 일주일 후,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소니는 ‘HD 비즈니스’에 사활을 걸겠다고 밝혔다. 소니는 HD 비즈니스의 핵심인 차세대 DVD 기술과 관련해 전 세계 ‘블루레이’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스토리지 수요가 급성장하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도 불붙고 있다. 과거 저장장치는 기껏해야 데스크톱·노트북과 같은 PC에 탑재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MP3P·디빅스·PMP·내비게이션 등 휴대형 퍼스널 제품에도 저장 기능은 기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디지털TV·셋톱박스·PVR·디지털캠코더 등 정보 가전도 새로운 수요처로 떠올랐다. 홈네트워크·지능형 로봇·차세대PC·텔레매틱스 등 차세대 기술도 모두 저장장치의 잠재 시장이다.
강대원 맥스터코리아 사장은 “과거에는 CPU 처리 능력이 IT 흐름을 좌우했지만, 이제는 대용량 데이터 처리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저장장치의 터줏대감인 HDD는 소형화하면서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기존 3.5인치에서 1인치 수준으로 크기를 대폭 줄이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 기폭제는 MP3P였다. 이미 HDD를 내장한 MP3P는 애플·도시바 등에서 출시했으며 국내에서도 레인콤·코원시스템 등 10여 업체가 관련 제품을 선보였다.
디지털 가전에서도 HDD가 대표 저장매체로 떠올랐다. 소니·JVC 등이 HDD 캠코더를 선보여 ‘수요 몰이’에 나섰으며 디지털 TV에도 HDD가 탑재되는 추세다. 산업계에서는 2007년까지 휴대형 기기 2대 중 1대 꼴로 HDD 기반 제품이고 특히 디지털 가전 시장에서는 무려 40억달러 규모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에 맞서 CD·DVD 등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광디스크(ODD) 업체는 최대 강점인 안정성을 부각하면서 대용량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ODD 진영은 ‘블루레이’ ‘HD DVD’를 양대 축으로 차세대 기술 확보에 성공하고 새로운 DVD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차세대 DVD는 기존 DVD의 4.7G∼8.5GB 용량을 뛰어넘는 20G∼54GB 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
블루레이는 삼성전자·소니·마쓰시타를 중심으로, HD DVD는 도시바·NEC를 주축으로 표준화에 나서고 있다. ODD 업체도 기존 PC 주변 장치 수준의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 게임기·디지털 가전 시장을 적극 넘보고 있다.
플래시 메모리 진영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저장 용량이 작다는 단점이 속속 깨지면서 HDD 등 기존 저장장치가 독점하던 시장을 급속하게 잠식할 태세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이번에 개발한 16기가 플래시 제품은 지금이라도 노트북PC의 HDD 대용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이미 주요 PC 업체는 이를 기반으로 제품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메모리 기반의 USB는 이미 휴대형 저장장치 시장을 평정한 상태다. 플래시 메모리는 앞으로 휴대폰·디지털카메라·캠코더 시장에서 초소형 HDD와 치열한 영역 다툼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영필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 IT 시장은 누가 얼마나 집적도가 높은 저장 기술의 주도권을 쥐는지가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라며 “PC 부속품의 하나로 여겨졌던 저장장치가 모든 디지털 제품의 필수 기술로, 제품 수요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