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토니 타키타니

최근에 본 가장 좋은 영화를 꼽으라면, 머뭇거리지 않고 나는 발음하기도 힘든, ‘토니 타키타니’를 추천하겠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단편소설집 ‘렉싱턴의 유령’ 안에 들어 있는 짧은 단편, ‘토니 타키타니’를 영화화 한 이 작품은, 하루끼적 특징, 그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문체의 힘으로 끌고 가는 문자언어를, 영상언어로 빈틈없이 구성해낸다. 그의 소설이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 의문점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거의 완벽한 해답을 제시한다.

감독 이치가와 준은 CF 감독 출신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지만, CF 감독 출신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를, 15초 리듬의 CF와 6000초 리듬의 영화가 갖는 차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사적 전개나 심리적 긴장과 이완의 흐름을 놓치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가장 좋은 영화가 ‘토니 타카타니’다. 영화의 한 컷 한 컷은 미묘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고, 어떤 현대 회화보다도 아름다우며, 구성적 이야기와 시각적 이미지들은 서로 조응하며 서로의 빈 곳에 빛을 던져준다.

재즈 연주자를 아버지로 둔 토니 타키타니(잇세 오가타 분)는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는 성장해서 섬세한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얻는다. 그가 결혼한 여자는 에이코(미야자와 리에 분). 긴 머리를 가진 그녀는 아름답지만,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보면 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쇼핑 중독의 여자였다.

에이코는 자신에게 돈이 생기면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구입한다. 결국 토니는 에이코에게 쇼핑 중독에서 벗어나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 되어버렸다.

731벌의 옷을 남기고 갑자기 사고로 죽은 아내. 토니는 자신의 여비서를 모집하면서 키 165cm, 사이즈 2, 신발 230의 여자라는 조건을 내건다. 근무 중 유니폼 입는다는 생각으로 아내가 남긴 옷을 입어달라는 그의 부탁을, 공고를 보고 찾아온 짧은 머리의 신임 여비서는 받아들인다.

13년전, 인기 정상에서 누드 화보집 ‘산타페’를 발매하여 커다란 화제를 몰고 왔던 미야자와 리에. 그 뒤 스모 선수와의 약혼과 파혼을 거친 뒤 10여년 동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녀는, 2002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파 배우로 재기한다.

미야자와 리에가 긴 머리와 짧은 머리의 여자로 등장해서 에이코와 여비서의 1인 2역을 맡는다. 그녀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루끼의 내러티브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오히려 하루끼적 언어를 통해 구축한 이치가와 준의 연출이 돋보인다. 그는 신과 신 사이의 텅 빈 듯한 적막, 그 휴지부의 떨림을 관객의 상상공간 속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인물들은 각각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는 관객 역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있다. 스크린이라는 전자적 거울의 특성을 통해 현대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바로 그렇게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힘든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가시적 세계에 가려진, 혹은 일상의 비루함과 그 빠른 속도감에 놓쳐버린 삶의 진실을, 하루끼는 자신의 문학적 테마로 삼고 있으며, 이치가와 준 감독은 바로 그것을 영화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아름답다. 그리고 쓸쓸하다.

당신은 이 무서운 전염병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가능하면 이 영화를 회피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족속이라면, 눈 앞의 세계에 열광하며 삶의 성취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토니 타카타니’가 던져 주는 매혹적 떨림, 그 유혹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